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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보단 ‘예방’으로 바꿔야… 모호한 법령 재정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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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국회의원회관 제7회의실에서 ‘중대[시민]재해처벌법 무엇이 문제인가? 실효성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이강우 기자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회의실에서 ‘중대[시민]재해처벌법 무엇이 문제인가? 실효성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이강우 기자

시사위크|여의도=이강우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중 ‘중대시민재해’ 실효성이 떨어져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언급이 나오고 있다. 예방이 아닌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규정이 불명확해 누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보다 구체적인 관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국회의원회관 제7회의실에서 열린 ‘중대[시민]재해처벌법 무엇이 문제인가? 실효성에 대한 토론회’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토론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한국방재학회가 주관했다. 

지난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중대재해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뉘며,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 △제조 △설치 △관리상의 결함으로 발생한 재해를 뜻한다.

너무나도 모호한 법… ‘처벌’ 아닌 ‘예방’에 집중해야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정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안전분과장(공학박사)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을 ‘예방’으로 전환하고 체계를 개편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범위로 중대시민재해 관리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분과장은 “중대시민재해는 산업재해보다 자주 발생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기 어렵다”며 “현행법에 따르면 중대재해는 사망이나 사상자가 나와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범위를 넓히고 예방적인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도 실제 처벌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인데 처벌에 중점을 둬 두려움을 유발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중대재해예방법’으로 전환하고, 국토교통부·환경부·소방청 등 여러 유관부서에서 관리하고 있는 현 체계를 국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총괄해 조종하는 역할을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 분과장은 “매년 전체 사망자의 10%가량인 3만명 내외가 재난·재해 등으로 사망하는데, 이 10%는 ‘노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토론회에 참석한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행안부가 이를 맡는 것도 좋은 방안이지만 ‘국가재난안전부’를 설립해 이를 종합적으로 해결하는 방안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토론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이강우 기자
사진은 토론회가 진행되는 모습./ 사진=이강우 기자

법 자체가 모호하고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입장도 나왔다. 첫 번째 토론을 맡은 전인환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과거에 실제로 대응했고, 중대시민재해로 검토를 했다 결국 해당하지 않는 걸로 결론지은 사건들도 많다”며 “이는 첫 번째 규정이 불명확하며, 두 번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진 처벌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선 “사고가 나기 전엔 과태료나 행정처분 규정도 없어 결국은 사람이 죽지 않으면 이 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즉 사람이 죽고 수사가 개시돼서 재판을 받아 봐야 위반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처벌 규정이 사실 없다 보니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감독할 수 있는 기관도 없다”고 전했다.

중대시민재해 의무 내용의 명확화 필요성도 언급됐다. 전 변호사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은 3가지 유형인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시설의 중대시민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단 하나의 조항(법 제9조)에 규정하고 있다.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산업안전보건법 및 그 하위 법령에서 약 1,200여개의 상세 조항이 있고 그 외 관계 법령 규정도 이미 정비돼 있다. 다만 중대시민재해의 경우 적용 범위가 넓어 개별 법규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개별 법령과의 정합성이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중대시민재해 관련 의무 이행 체계를 중대산업재해와 별개의 독자적 체계로 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구조적 문제해결 필요… 왜 ‘처벌’ 들어갔는지 잊지 말아야

채종길 서울연구원 안전인프라연구실 연구위원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에 동의했다. 이어 ‘구조적’ 원인 해결에 중점을 잡아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시 원인을 규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채 연구위원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관리자의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왜 관리자가 극도의 피로 상태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연구위원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당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담당자는 며칠간 밤을 새우며 근무를 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2023년 7월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침수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및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사진은 지난 2023년 7월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침수사고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및 배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이 같은 사고를 효율적으로 예방하려면 사고 조사뿐만 아니라 데이터 분석 또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연구위원은 과거 특정 모델의 김치냉장고의 화재 사고가 417건이나 발생하고 나서 리콜 조치가 이뤄진 사례를 들어 “유사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원인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사고 조사 시스템은 그저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아닌 사고의 반복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전했다. 여기에 데이터 제공을 꺼릴 기업을 위해 데이터를 제공 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 이름에 왜 ‘처벌’이라는 단어가 포함됐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오민애 변호사(민변 이태원참사 법률지원TF 단장)는 예방을 중시하는 건 필요하지만 ‘처벌’이라는 단어가 왜 삽입됐는지를 상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오 변호사는 “법에 ‘처벌’이 들어간 이유는 그동안 참사가 발생해도 책임자들이 제대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고, 피해자들의 입장에선 무죄판결을 받거나 재판까지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마치 책임자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사회적으로 정리되는 측면도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이를 통해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선을 다하지 않아 이로 인해 사상의 피해가 발생하면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일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오 변호사는 “책임자가 보고를 형식적으로 잘 받고, 이에 대한 결재 서류를 잘 갖추면 실제로 어떤 과정이 이뤄졌느냐는 상관없이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을 수 있어 책임을 묻지 못하는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편, 개선이 필요하지만 중처법의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는 점에 대해선 공감이 이어졌다. 

김정곤 경실련 안전분과장은 “국민 전체가 안전을 생각하는 일이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어 중처법이 나쁜 법이 아니다”고 전했다

전인환 변호사도 “중처법이 실시된 이후 기업의 안전담당자뿐만 아니라 경영자들도 안전에 큰 관심과 비중을 두는 등 사회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좌장을 맡은 박안길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이사장도 “중처법은 기업들의 큰 관심을 받고, 안전에 대한 개선을 이끌어낸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시사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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