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두 번, 우도는 극과 극의 얼굴을 불쑥 내민다. 수평선에 걸친 석양빛에 붉게 물들었던 바다는 새벽 나절 오간 데 없이 사라진다. 대신 그 자리엔 지평선에 닿은 대지(臺地)가 펼쳐진다. 끝 모를 모래땅이다.
인천시 강화 외포리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오지의 섬. 이곳의 군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은 신참들은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근 한 달을 보낸다. 분명 ‘철렁’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취침 점호를 하고, 망망대해 외딴 섬에서 가족과 떨어져 있는 서러움을 삭이며 잠이 들었건만….
어라! 기상나팔 소리에 깬 우도의 세상은 흡사 끝이 가물거리는 사막 한가운데 봉곳이 솟은 오아시스의 모습이라…. 신참들은 서해 앞바다의 조화(造化)에 혼을 빼앗긴다.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88, 90의 96 우도(21만1천537㎡). 강화도 섬 중에서 가장 서쪽으로 치우친 유인도이다. 그래서 강화군보다는 옹진군 연평도가 더 가까운 섬이다.
유인도라지만 민간인은 살지 않을뿐더러 출입도 엄격히 통제된다. 다만 이 섬을 지키고 있는 군인들만이 오갈 뿐이다.
군인들은 이 섬에 ‘모로도(毛老島)’라는 별칭을 붙인다. 그 유래는 알 길 없지만, 장병들의 얘기로는 머리(毛)가 허옇게 세(老)도록 나이를 먹어도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섬(島)이라 해서 일컬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이야 군인들만 있지만, 민간인들이 이 섬에서 살았던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다. 군인들이 지금 사격장으로 쓰는 곳을 포함해 섬 여기저기에는 누군가가 화전(火田)으로 땅을 고르고 농작물을 길렀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터를 잡고 살았었다고 짐작하고도 남을 만한 증좌가 또 하나 있었다. 흙 속에 덮인 조개더미, 패총(貝塚)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섬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로 지르는 진지 통로의 땅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섬, 우도에서 패총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할 일이다.
북방한계선에 인접한 유인도에서 조개 무덤인 패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은 생뚱맞은 일만은 아니다.
인천시립박물관 측은 강화군 교동면 대룡리에서 패총 발굴 작업을 한창 벌였다. 지금이야 반듯하게 경지를 정리해 논으로 변했지만 이곳은 주민들 사이에서 ‘조개 맨들’이라고 부른다.
실제 8.4㏊에 이르는 발굴현장에서 상당 규모의 조개 무덤이 발견됐다. 좀 더 조사가 이뤄져야 확실하겠지만, 마한·진한·변한 때인 원삼국시대의 유물로 추정되고 있다.
패총에 있어 서해5도도 예외는 아니다. 백령도 용기포와 연평도 연평우체국 뒤 능선, 소연평도 등지에서도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는 패총이 발견됐다.
어찌 됐건 시대 불분명의 패총이 자리한 데는 드넓은 우도의 모래 해안과 떼어 놓을 수 없다. 북한 해주만에 닿을 정도로 너른 우도의 해안 사구는 조개류가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내어줬고, 이를 쫓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우도에 터를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도가 특정 도서로 지정되기까지는 모래펄인 간석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 범게의 대량 서식지로 대표될 만큼 무수히 많은 해양생물이 우도의 모래 해안에서 살을 찌우고 있는 것이다.
지난 참여정부는 서해평화협력지대 조성을 놓고 남북 합의를 하면서 서해 접경지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동 학술조사를 피력했다. 남북이 공동으로 북방한계선 인근 해양 생태계를 조사도 하고, 역사와 문화 분야의 학술교류도 성사시킬 작정이었다.
이런 취지에서 우도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섬이다. 물때를 잘 맞춘다면 드러난 사구를 걷다가도, 그리 넓지 않은 갯골을 헤엄쳐 넘으면 북한 해주를 오갈 수 있는 지척의 거리가 우도다. 북한과 연계성이 그만큼 깊다. 우도의 패총이 남북 학술교류의 고리로 작용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도의 또 하나 특징은 강화의 여느 특정도서와 달리 식물상이 그런대로 잘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종인 소사나무 군락이 서쪽 해안을 가득 메울 정도다. 여기에 군(軍)이 섬을 관리하면서 괜찮은 생육상태를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아쉬움 점은 우도를 특정도서로 지정한 이유로 들고 있는 희귀식물 ‘석위’의 대단위 분포지다. 석위는 서해안 섬에서 웬만하면 볼 수 있는 난대성 식물이다. 쉽지 않게 볼 수 있는 식물도 아닐뿐더러 자생지 역시 흔치 않은 것도 아니다.
차라리 한국특산종인 소사나무의 대규모 군락지라는 명분이 더 나을 뻔했다는 감마저 든다. 그것도 아니면 괭이갈매기의 서식지를 특정도서 지정의 이유로 내세웠더라면 하는 어설픈 아쉬움도 지울 수 없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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