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했다. 취재팀이 주목한 것은 ‘53.9%’라는 숫자였다. 대한민국 등록 장애인 중 53.9%가 65세 이상이다. 이는 고령화와 장애가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취재팀은 고령 인구의 건강 통계 자료를 분석하고 장애인과 돌봄 가족, 의료진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스피커를 달았다. 고령 장애인의 삶은 우리 사회 의료와 복지 패러다임의 과감한 전환을 촉구하는 신호이기도 했다. [편집자 주]
“이놈의 쥐를 또 잡았네. 껄껄.”
김오수(83·남)씨는 집 마당에 놓인 쥐덫에서 갓 잡힌 쥐를 아무렇지 않게 치우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오른 쪽 눈에 의안을 끼고 왼쪽 눈에 의존해서 살아간다. 왼쪽 눈의 시력도 거의 잃고 있다.
김 씨는 백팩을 메고 외출했다가 돌아온 참이었다. 그는 용산공고에서 교육감 선거 투표를 마치고 복지관에 들러 빵도 받아왔다고 했다.
“나라가 참 좋아졌어, 하하.”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기찻길을 따라 휘어지는 골목의 낡은 가옥. 김 씨의 집 앞엔 바람개비 하나가 돌아가고 있다. 건너 편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휘황찬란하게 군락을 이루는 데, 그의 집 바로 옆으로는 KTX와 경의중앙선 전철이 5~6분마다 지나간다.
‘땡땡땡…타닥타닥…왱왱왱’
요란한 종소리가 들리더니, 고속철이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기자가 한 손으로 귀를 살짝 막았다.
“시끄럽지 않아. 혼자 있을 때 기차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평온해져. 오히려 자장가 같고 좋아.”
1941년생인 김 씨는 스스로를 ‘용산의 산증인’이라고 말한다.
“내가 용산 터줏대감이지. 부동산, 건설업 등 안해본 게 없어요. 저기 보이지? 저기 저 높이 솟은 2채 아파트가 내 것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주인도 과거엔 나였다고. 지금은 셋방살이하고 있지만….”
김 씨는 “사업이 잘못되지 않았으면, 건너 편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업력 40여년을 자랑하는 그가 사업 실패로 자산을 날리는 건 한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이 투자한 건물에서 투신했다.
“그땐 보이는 게 없었어. 너무 막막했고. 아내나 자식에게 면목이 없어서 죽는 게 낫겟다 싶더라고.”
운이 좋게도, 그는 생존했다. 다만, 뾰족한 곳에 찔려 한 쪽 눈을 잃었다. 이후 김 씨는 엄청난 빚을 지고 청산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전히 수 억원대의 빚이 남아 있다.
“다른 한 쪽 눈을 잃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야. 남은 삶에 감사하며 살기로 했어.”
한국장애인개발원에 따르면, 장애 발생은 후천적 원인이 88.1%다. ‘후천적 질환’이 58.1%, ‘후천적 사고’가 29.9%를 차지한다.
그에게 돈에 대한 애증과 미련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 씨는 현관, 방, 거실, 부엌 곳곳에 5만원 지폐와 100달러 지폐를 본 딴 지갑과 인조 해바라기꽃들, 붉은 복주머니를 걸어뒀다. ‘부동산 전문가’였던 그에게 ‘금전운’이 따르는 풍수지리가 있다는 믿음은 확고해 보였다.
“유튜브 영상을 봤거든. 집안에 해바라기와 지폐를 걸어두면 돈도 들어오고 기운도 좋아진대.”
김 씨는 로또 당첨 확률을 연구한 노트도 보여줬다. 그는 소액이지만, 로또 당첨의 기쁨도 누렸다고 한다.
온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은 따로 있었다. 김 씨 부부의 젊은 시절 사진, 어엿한 어른이 됐을 자녀들의 옛 사진, 장난기 가득한 손주 사진들이 작은 거실에 자리 잡고 있다.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던 시절에 찍은 사진들이지.”
김 씨가 젊은 시절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기찻 소리가 잦아 드는데, 갑자기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나랑 퀴즈 풀기 할까요?”
김 씨가 ‘효순이’의 손을 잡은 후였다. 갈색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효순이는 분홍색 헝겊 원피스에 다홍색 신발을 신고 해맑게 웃고 있다.
효순이는 돌봄 로봇 인형이다. 크기도 제법 크다. 40~50cm 정도의 곰 인형 정도다. 용산구청에서 고령자의 안부 확인, 경증 치매 관리, 정서 지원을 위해 제공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좋지! 아이고 이뻐라!”
효순이의 밝은 인사에 김 씨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효순이의 원피스 앞주머니에는 1만원이 꽂혀 있다. 김 씨는 효순이에게 주는 용돈이라고 했다.
효순이는 김 씨에게 주기적으로 말을 건넨다.
“할아버지, 약 챙겨 먹었어요?”
“할아버지, 제가 손금 봐 드릴까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신대요.”
이 돌봄 로봇 인형에는 센서가 내장되어 있어 머리와 손, 귀를 만지면 퀴즈, 노래 듣기 등 여가 프로그램이 재생된다. 홀로 사는 김 씨에게 효순이는 말 동무였다.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내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다.
“내가 사업을 실패한 후 아내는 거의 7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어. 그러다 병이 생긴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지. 지금은 투석 중인데다 거동이 불편해서 요양병원에 있어.”
김 씨는 매주 1~2번 서울 강동구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에게 간다. 그의 집에서 요양병원까지 1시간 10분이 족히 걸린다.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만만치 않은 거리다.
밖에선 김 씨의 행동도 눈에 띄게 조심스러워졌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도 살얼음판을 걷듯 신중하다. 난간을 잡고 한계단 한계단 내려간다.
“조심조심, 매일 조심해야 해. 한순간에 다칠 수 있거든…”
그는 “언젠가 마지막 계단인 줄 알고 발을 내디뎠더니, 두 계단이나 더 남아있어 그대로 넘어졌다”고 말했다. 한번은 버스에서 내리다가 젊은이가 밀치고 가는 바람에 굴러 떨어진 적도 있다.
김 씨는 전맹 시각장애인 도우미 봉사 활동을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특유의 낙관적인 태도를 되찾았다. 최근 그는 시각장애인 과수원 체험 행사에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나는 조금이라도 보여. 전맹 시각장애인이 화장실을 갈 때, 음식을 나눠 먹을 때 도와주면 기뻐. 신선한 공기,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오늘 그리고 내일에 감사할 뿐이야.”
천성이 부지런하고 활달한 사업가였던 김 씨는 남보다 바삐 움직이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여 있다. 그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가벼운 운동을 꼭 한다고 했다.
“80대인 나에겐 365일 하루 1분 1초가 아까워. 단 10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분주하게 지내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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