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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개 두 마리와의 밸런스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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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3년 전 가족이 된 김정원과 지난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집을 찾아온 하리.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강아지 임시보호는 없다!’고 다짐했던 내가 지난해 말, 또 어쩌다 이 작은 개를 데려오게 됐냐고 묻는다면? 역시 일상이 송두리째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한 지난해 12월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계엄은 몇 시간 만에 끝났다고 해도 총구가, 죽음이 삽시간에 우리 이마에 와닿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러나 탄핵 소추안 가결과 체포 등 당연히 진행돼야 할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무력감이 찾아왔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기적임을 고백하자면, 하리는 그렇게 나에게 왔는지도 모른다. 홍성 보호소에서 죽음을 앞뒀던 강아지. 세상을 바꿀 수 있기는커녕 세상이 규칙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절망이 스며들던 저녁, 크리스마스를 앞뒀지만 아무것도 축하하고 싶지 않았던 어느 밤. 스마트폰 속에서 본 보호소의 개들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철창에서 추위를 온몸으로 맞으며 정말 매일 죽었다. 그중 심장사상충까지 걸려서 하루를 기약하지 못하던 강아지가 있었고, 절대 안정이 필요해 격리 돌봄이 필요하다는 말에 나는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입양까지 책임지기로 결정했다.

구조 의사를 밝힌 후 봉사자의 확답이 오기 전까지가 가장 두려웠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다른 강아지에게 관심도 없는 정원이를 평생 가족으로 받아들일 때 더 이상의 임보는 없을 거라고 굳게 다짐했는데. 자기 효능감에 목마른 반려인의 이기적인 결정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몸은 움직였다. 우선 안방 가구를 재배치하기 시작했다. 하리가 아니라 정원이를 위해서, 침대를 옮기며 정원이와 마주치는 것을 최소화하면서 최대 공간을 만들었다. 보호소에서 연락을 받은 때는 크리스마스이브였다. 파티 대신 밤운전을 해서 홍성에 달려가 하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김정원의 체중은 9kg. 하리는 몸길이가 더 긴데도 4.5kg. 엉덩이뼈까지 만져지는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였다. 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누르고, 얼른 밥을 챙겨주고 나와서 정원이와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 자리를 비운 내가 새 강아지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버렸을 때 정원이가 느꼈을 감정을 외면해선 안 됐다. 그 후로 오늘까지 매일매일 내 삶은 ‘적절하게 사랑하는 것’에 맞춰져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하리는 과도한 관심과 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상태다. 심장사상충 환견이기 때문에 과도하게 신나거나 흥분할 경우 급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유리알 같은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웰시 코기처럼 다리가 짧똥해서 옷소매를 접어서 겨우 입히고 앉아 있으면, 부정교합 때문에 묘한 ‘웃상’인 입가를 보고 있으면 너무 귀여워서 힘들어지는 것이다. 개가 흥분하는 건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귀여워서 만지고 싶은 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원이를 반려하며 배운 가장 큰 교훈은 강아지가 루틴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온종일 쓰다듬고, 만지고, 귀여워하다 그만큼 채우지 못하는 어느 날이 온다면 나는 하리에게 외로움을 가르친 셈이 된다. 산책 전후 안아서 안방으로 들어온 후에 마음 같아서는 벌러덩 누워 몇 시간이고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적절하다고 느끼는 만큼만 예뻐해주고 나온다. 스스로 지키고 있다고 믿는 그 애매하고 희미한 선 끝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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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정원이는 내 노력을 알아주는 것 같다. 하리에 대해 적대적으로 나오지도 않고, 나에게 과도한 애정을 갈구하지도 않으면서 여전히 거실 케널에서 자고, 아침에만 내 침대로 뛰어올라와 아침 인사를 하고, 가끔 침대 너머의 하리를 곁눈질로 본다. ‘갑자기 우리 집에 침투한 얄밉지만 조용한 친구’. 정원이는 하리를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단기 임시보호를 포함하면 이미 네 번째지만 반려하는 강아지가 있는 상태에서 임보 강아지를 돌보는 일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내 선의가 어떻든 두 마리 강아지에게 지속 가능하고 정당한 사랑을 쏟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늘 하리와 먼저 산책하는 대신 정원이와는 더 느긋하고 긴 산책을 하고, 체중 증량이 필요한 하리에게만 특식을 주고 나오면 소파에서 입맛을 다시던 정원이를 안고 눈을 맞추며 시간을 보낸다. 정원이를 바라보며 하리가 전부인 보호자와 이런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정원이와 있을 땐 ‘정원이에게 집중해야지’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터져나오는 사랑을 두 강아지에게 맞춰 커스터마이징하느라 깎고 욱여넣으며 우리는 2025년 첫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 어설프게 세운 내 매뉴얼에도 늘 편안히 자고 먹고 쉬어주는 하리와 그 매뉴얼을 차근차근 생각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있어준 정원이에게 무한히 고맙다. 정원이를 위해 얼른 하리의 완벽한 가족이 나타나길 바라고, 하리를 위해 정원이의 오늘이 편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비록 걱정 많고 마음만 바쁜 보호자의 마음은 오늘도 보수 볼 위에 한 다리로 서서 휘청대는 것과 꼭 같지만, 강아지들만 눈치채지 못하면 된 거다. 하리야, 많이 먹고 얼른 튼튼해지자! 정원아, 우리 꼭 하리한테 좋은 가족 찾아주자!

엘르
엘르

곽민지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방송작가로도 일하고 있으며,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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