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박설민 기자 화재 현장에서 연기로 차단된 시야는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꼽힌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현장 내부에서는 손발의 촉감만으로 구조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뜨거운 열기, 무너지는 건축자재 때문에 사람을 내부로 투입하는 것은 극히 제한된다.
국내 연구진이 촉각 피드백을 활용, 직관적으로 재난 현장에 투입 가능한 드론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오일권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형상기억합금 와이어를 활용한 ‘직교 방향 제어 웨어러블 햅틱(WHOA)’기술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햅틱(Haptic)’은 시·청각을 넘어 촉각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의 진동 알림처럼 피부로 감지할 수 있는 물리적 신호를 제공한다. 만약 화재 등 재난 현장에서 햅틱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원래 변형된 상태가 원래 형태로 돌아오는 소재가 필요하다.
이에 KAIST 연구진은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했다. 형상기억합금은 특정 온도로 가열하면 변형된 상태에서 원래 형태로 돌아온다. 이를 활용, 특수 금속으로 촉각을 구현하는 작동기를 만들었다.
이때 연구팀은 가볍고 단순한 ‘직교 메타구조’로 3차원 공간정보를 촉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시각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도 주변 환경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재난, 화재, 극한환경에서 효과적인 모빌리티 제어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시각 정보가 제한되는 상황에서도 공간정보를 직접 감지할 수 있다.
촉각 피드백은 좌, 우, 상, 하, 전진, 후진 같은 공간 이동뿐만 아니라 전방 장애물 감지 시 독특한 햅틱 패턴까지 전달하도록 설계됐다. 재난 구조와 긴급 구호 작업 같은 중요한 상황에서 작업 효율성과 안전성을 크게 끌어올릴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기술들을 적용한 WHOA는 웨어러블 형태로 제작됐다. 몸에 착용하면 드론 조종사는 가로, 세로 방향의 독립적인 촉각 모드 조합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입체적인 공간정보 피드백을 받는다. 특히 이 기술은 신발 내부의 작은 공간에서도 동작하도록 설계됐다. 장시간 착용할 시 피로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다음 이동 방향을 파악할 수 있어 실용성이 뛰어나다.
연구팀은 WHOA를 적용한 드론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가상현실(VR) 환경에서 실증했다. 화재 현장의 건물을 배경으로 한 시뮬레이션에서 WHOA를 착용한 사용자는 드론을 조종하며 위험 구역을 회피하고 구조 작업을 수행했다. 그 결과, 드론이 수집한 공간 데이터는 촉각 피드백으로 정확히 사용자에게 전달됐다. 또한 WHOA는 연기와 잔해로 시야가 제한된 환경에서도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드론을 제어할 수 있도록 보조했다.
오일권 교수는 “이번 기술은 촉감을 활용해 길을 안내받을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내비게이션 기법”이라며 “착용형 햅틱 인터페이스는 입체적 공간정보를 촉감으로 전달해 재난, 화재 환경 또는 국방의 MUM-T(유무인 협력 전투체계)에서 드론이나 로봇의 원격제어에 활용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NRF)이 추진하는 ‘중견연구지원사업’으로 수행됐다.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Advanced Materials)’에 지난 8일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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