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11일 오후 2시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 20여 년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월미도 해상에 닻을 내렸다. 그간 긴 여정의 뱃길을 가로막았던 풍파는 2003년 6월11일 인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해양수산부 장관 초청 강연회에서부터 일기 시작되었다.
그날 강연회에 참석한 이들은 한목소리로 ‘인천 해양 발전’을 위한 정부의 지원 확대를 촉구하면서, 그 일환으로 ‘국립해양박물관’ 유치를 요청했다. 한 시의원은 “인천은 국립해양박물관 건립에 최적지다. 정치적 고려보다는 국민을 위하는 마음과 수도권 시장 수요를 감안해 국립해양박물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허성관 해수부 장관은 그에 대해 “현재 인천과 부산, 여수 등에서 건립 요구가 들어오고 있지만, 지자체에서 명확히 개념을 정립한 후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 발을 빼는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자리를 함께한 안상수 시장과 황우여·조한천 의원, 이수영 인천상의 회장, 윤태진 남동구청장 등은 이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성관 장관의 말대로 “지자체에서 명확히 개념을 정립한 후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멀리는 저 백제의 능허대 시대에서부터 1883년 개항 후 우리나라 해양사의 대부분을 역사에 부단히 기록해 온 인천에 ‘국립해양박물관’이 설립되는 것이 사필귀정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역사적·지리적 배경과 환경은 고사하고, 시민 139만명의 염원을 담은 서명지 전달조차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때 기획예산처의 ‘예비타당성조사’에 실망한 이들은 “공익성을 추구하는 국가 시설의 유치 에 수익성을 기준으로 정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이는 “수도권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총선을 앞두고 특정 지역을 배제할 수 없는 ‘정치 논리’가 작용해 인천 지역 설립의 당위성을 제대로 검증받지 못했다고 분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국립해양박물관’은 2012년 7월9일 국립해양조사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립수산물픔질관리원,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해양환경교육원 등 우리나라 해양 관계 기관과 시설이 들어차 있는 부산시 영도구에 국내 세 번째의 규모로 개관하였다. 해양 관련 기관과 시설의 ‘부산 집중화’에 한 켜를 더 쌓은 것이었다.
과연, 부산에 ‘국립해양박물관’을 낙점시킨 해수부의 정책이 역대 정부가 구두선처럼 되뇌어 왔던 ‘균등한 지역 발전책’의 하나였을까? 아니면 세상이 일컬어 왔던 그대로 ‘해수부’의 자발적인 정치적 고려였을까? 혹은 영도구가 지역구인 김형오 당시 국회 부의장의 정치력에 맥없이 인천이 당한 것일까?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2017년 민선 6기 유정복 시장 때였다. 유 시장은 개항 후 최대의 문화 사업으로 떠오른 ‘뮤지엄파크 조성 사업’을 결단한 직후, 인천시립박물관장을 불러 ‘국립해양박물관’ 유치 사업을 재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에 따라 시립박물관장은 인천시 항만국장, 인천해양항만청장, 인천항만공사 사장 등과 회동하고, 유치에 따른 각 기관의 역할 분담을 숙의했다.
더불어 인천시립박물관의 석·박사 학예사 팀은 ‘국립해양박물관’ 유치를 위한 논리 개발에 나섰다. ‘왜 인천에 국립해양박물관을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학문적 토대를 명증하게 마련하기 위한 작업이었는데 수개월 만에 이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후에 그 결과물의 하나로 출판된 간행물이 ‘해양의 도시, 인천’이었다. 127쪽에 각종 사진 자료와 도판, 해설 등을 실은 이 책은 ‘인천의 해양사’를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 안내서와 같았고, 우리나라 해양사의 태반이 인천 지역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조망해 주었다.
그러나, 최근 개관한 ‘국립인천해양박물관’에는 마땅히 전시되어 관람객들에게 널리 알렸어야 할 ‘해양의 도시 인천’의 진면목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수준이었다.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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