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독일 화가는 샴페인을 그렸을까?
독일에서는 스파클링 와인을 젝트(Sekt)라 하니 엄밀히는 프랑스 샴페인을 그린 것인 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오늘 소개하는 작품을 그린 로비스 코린트가 뮌헨(1880~1884)에서 미술공부를 하다가 프랑스에서도 6년 정도(1884~1890) 공부하며 작품활동을 했다고 하니 샴페인을 모를 리가 없다.
그리고 그가 뮌헨에서 9년(1891~1899)을 보낼 때 와인과 샴페인을 많이 마셨다고도 하니 그의 작품 속의 스파클링 와인은 샴페인일 확률이 높다.
그는 1900년부터는 베를린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젝트(Sekt)라 불리우는 스파클링 와인이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1826년이고 1850년대부터 그 생산량이 급증했다고 하니 작가가 독일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890년대 이후에 독일에서 스파클링 와인은 꽤 흔히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독일화가가 그린 작품명은 ‘샤를로테 베렌트(1880~1967)와 샴페인잔을 든 자화상 (Self-portrait with Charlotte Berend and champagne goblet)’이다.
독일어 작품명에 아예 젝트잔 즉 스파클링 잔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를 영어권에서 샴페인으로 번역을 한 것이다.
우선 자화상이라고 하지만 작품 자체가 약간은 충격적이다.
우리가 흔히 초상화라면 생각하는 한 사람만을 그린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을 그린 것도 그렇고, 더구나 여인은 상반신을 노출한 상태이고 작가인 자신은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다른 한 손은 여인의 가슴 부분을 만지고 있는 것도 파격적이다.
이 때는 둘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였고 1년 후에 이 여인은 작가의 부인이 되었다.
와인 잔은 쿠페형이어서 스파클링 와인 잔이긴 한데 와인이 붉은 색을 띄고 있어 딱히 로제 혹은 레드 스파클링 와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레드 와인이라고 해도 통할 것 같다.
더구나 뒤의 탁자위에는 샴페인 병이라기 보다는 스틸 와인 병 같아 보이는 병과 쿠페형잔이 두 개가 있는데 잔은 둘 다 비어 있다.
이 작품을 설명하는 글들에서 이 와인이 레드 샴페인이라고 하기에 샴페인인 줄 알지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잔으로 보면 확실하게 샴페인일 것 같기는 하다.
사실 그녀가 작가 사후에 쓴 자서전에서는 와인으로만 나오기에 샴페인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작가가 작품명을 그리 정했으니 레드 샴페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작품명을 떠나 이것이 샴페인이라고 추정하는 이유가 있다.
소위 탱크속 2차 발효 방식인 샤르마 방식이 1895년 이탈리아 아스티에서 마르티노티(Federico Martinotti)에 의해 발명됐고, 좀 더 개선된 방식으로 특허낸 것은 1910년 프랑스 샤르마 (Eugenio Charmat)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좀 더 고급스럽게 이 탱크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재도입된 것은 1936년부터라고 하니 이 작품을 그린 1902년에는 독일에는 탱크 방식은 아예 없었다.
아무리 독일의 스파클링 와인이라 해도 샴페인 방식으로 생산한 것이니 샴페인이라도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샴페인 등에 대한 원산지 증명제도가 프랑스에서 제정된 것이 1919년부터라고 하니 이 작품이 그려진 시기에는 샴페인이라는 용어도 다른 나라에서도 사용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이 작품은 1902년에 그렸는데 1901년 작가가 베를린에 회화 학원을 열었을 때 첫 학생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인이었고 이들은 1902년 발트해로 여행하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그 다음 해인 1903년 결혼했으나 정작 결혼식은 1904년에 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에 아들을 얻었고.
작품을 보면 둘이 살짝 미소를 띈 상태이고 둘의 시선이 감상하는 사람의 눈과 마주치게 되어 분명 그림인 줄 아는데도 마치 대화를 나누어야 할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작가는 이 그림을 약혼 사진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느낌이 틀린 것도 아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 1858~1925)로 그는 독일 화가이자작가이기도 하고 판화가이기도 했는데 그는 인상주의(Impressionism)과 표현주의(Exptressionism)를 종합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파리와 뮌헨에서 공부한 후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초기에는 표현주의에 반대하고 자연주의적 접근법으로 작품을 그렸다. 하지만 1911년 뇌졸증을 앓고 나서는 오히려 표현주의적 색채를 띄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초상화와 풍경화, 누드와 역사화와 성서적 장면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남겼다.
평론가들은 앞에서 소개한 작가의 작품이 본인의 독창적인 그림이 아니라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렘브란트의 어떤 작품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을까?
렘브란트(1606~1669)의 한 작품에서 여인(이 여인은 렘브란트의 아내다)이 와인잔을 들고 건배를 하고 있는데 이 장면은 성서(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아가 여관에서 창녀와 놀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얼핏 보면 잔모양이 아주 길죽하고 색깔로 보아 맥주인가 싶기도 하지만 와인이라고 한다.
1635년 작품이니 당연히 샴페인일 리는 없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이 초상화의 모티브를 성서에서 빌려왔지만 작품은 성서와는 상관없이 애로틱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눈빛 처리는 여기도 감상자가 무언가 대화를 나누어야 할 듯하여 두 그림이 정말 너무 흡사하다는 느낌을 준다.
코린트가 무려 267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하여 선배 화가인 렘브란트의 작품을 모티브로 나름 새롭게 창작해낸 셈이다.
세월이 흘러서 그런 지 과감하게 노출신까지 선보이며 완전히 다른 데도 신기하게도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렘브란트도 장난기 어린 표정이 비치는데 코린트 역시 작품 속에서 살짝 취한 듯한 표정이다. 이런 재미있는 자화상을 구상한 두 화가의 유머러스한 장난기가 오늘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까지 전달되어 미소 짓게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연인과 남편의 요구에 흔쾌히 응한 여인들의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코린트의 연인인 샤를로테(1880~1967)는 이때가 22살이라는 나이였는데.
사랑의 힘이었을까? 치기였을까? 아니면 사진 대신 추억을 남긴다는 마음이었을까?
로비스 코린트의 다른 작품들을 감상하며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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