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이미 다수 국가에서 디지털 자산에 관한 별도의 법이 마련돼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 자산 접근성 등 다양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제도를 지속 고도화하는 중이다.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주에서 개정 통일 디지털 자산 접근법(RUFADAA)을 채택했다. 해당 법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와 서비스 제공자의 이익, 디지털 자산 관리자의 이해관계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자산의 처리 방식을 지정토록 하며 고인의 동의 없이는 상속자가 디지털 유산에 접근 불가하다. 서비스 제공자(기업)의 가이드라인이 유언이나 위임장보다 우선하고 법을 준수하는 서비스 제공자에게는 면책을 제공한다.
프랑스는 2016년 발효된 ‘프랑스 디지털법’을 통해 개인이 사망 전 디지털 유산의 승계 또는 폐기할 권리를 규정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고인의 지침이 없는 경우에도, 상속인은 고인의 모든 계정을 폐쇄할 권리가 있다. 서비스 제공자의 이용약관 중 이같은 권리를 제한하는 조항은 무효가 된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일반 민법(ABGB)의 상속법 조항이 디지털 유산에도 적용된다. ABGB 제531조에 따르면, 엄격히 개인적인 성격이 아닌 한 고인의 디지털 콘텐츠는 상속 재산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콘텐츠와 아날로그 콘텐츠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보다 넓은 범위의 상속 방식을 채택하는 곳도 있다. 독일은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BGH)이 SNS 계정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며 디지털 유산 상속을 인정했다. 법원은 디지털 콘텐츠를 일기나 편지와 같은 아날로그 문서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해당 판결은 디지털 자산이 사용자의 재산이며,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소유가 아니라는 원칙을 확립했다.
에스토니아는 민법 일반 부분법(GPCCA)을 통해 디지털 유산을 규제하고 있다. 상속인은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 고인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승계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이메일, 소셜 미디어 메시지 등도 하드 드라이브나 USB에 저장돼 있다면 상속 가능하다.
네덜란드는 민법(Burgerlijk Wetboek)에 따라 모든 유형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디지털 자산 상속에 대한 특별한 제한은 없다.
이에 비해 국내는 디지털 유산 관련된 법이 미비하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유산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법안을 마련하는 추세인 반면, 한국에서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을 통해 접근하려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 법체계와의 충돌을 야기한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당사자 사후에 타인이 온라인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학계는 입법 공백이 플랫폼 기업의 대응 체계를 소극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유가족들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해원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입법 공백 상황에서 내부 가이드라인 생성을 전적으로 플랫폼에 맡겨놓으면 빅테크와 스타트업을 막론하고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온라인상에 있는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기본적인 규칙을 정해야 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한편 글로벌 기업은 대체로 로그인 세부 정보에 대해 고인의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구글은 비밀번호 또는 로그인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다만 ‘휴면계정 관리자’를 통해 사용자가 생전에 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나 계정 삭제 여부를 설정할 수 있도록 상세 페이지를 마련해 놓았다.
메타와 인스타그램 또한 ‘어떠한 경우에도 다른 사람의 계정에 로그인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신 고인의 계정을 신고해 기념 계정으로의 전환 혹은 계정 삭제가 가능하다.
반면 애플은 고인의 가족 구성원이 계정에 접근 권한을 요청할 수 있도록 설정했다. 다만 기기 내에 있는 데이터는 모두 삭제된다.
손지혜 기자 j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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