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서린 한(恨)이 그곳에 옮겨진 것일까? 본디 한 덩어리이었을 땅이 이어질 듯 아슬아슬 끊겨 두 덩어리로 갈라진 것이 꼭 한반도를 빼닮았다.
천지가 조화를 부린 것일까? 지척에 두고도 갈래야 좀처럼 닿을 수 없는 것도 한반도의 그것과 다름없다.
이름의 뿌리도 알 길 없다. 둘로 쪼개진 땅(分地)이어서일까, 아니면 뚝배기를 엎어놓은 듯 가운데가 옴폭 들어간 땅의 모양(盆地)에서일까. 특정도서 제7호 분지도.
강화 외포리 선착장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밖에 있는 분지도는 뭍사람들의 접근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직으로 내리꽂은 절벽도 그렇거니와 금방이라도 조바심에 아찔한 물길조차 생면부지의 왕래를 거부하고 있었다. 1t도 채 안 되는 선외기 낚싯배는 여기저기 난데없이 솟아오른 물속 여(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의 공격을 피해 다녀야만 했다.
조심 또 조심. 방향키를 잡는 한 사람만 있으면 족한 여느 섬의 상륙과는 사뭇 달랐다. 뱃머리 양쪽에 장정 두 사람이 눈금이 그려진 긴 장대를 들고 연신 바닷속을 훑으며 방향키를 잡은 선장(?)을 향해 외마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를 반복했다. “삼~, 이~, 일~” 수심을 가리키는 외침이었다. 머뭇거리다가는 낚싯배가 여를 들이받거나 불쑥 올라온 모래톱에 배 밑창이 걸릴 수 있다는 경고의 고함이었다.
가슴 졸이기를 10여 분. 실낱의 모래펄로 이어진 두 덩어리의 무인도가 조용히 누워 있었다. 3만5천901㎡의 분지도다.
남들이야 ‘에게~ 요게 특정도서야!’라고 말할 법하지만 분지도는 강화군 특정도서 8군데 중에서 우도를 빼고 둘째로 큰 규모다. 사실 말이 ‘특정도서’지 범인들의 눈에는 그리 별다를 것도 없다. 손을 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되레 어색할 정도다.
큰 덩어리의 땅은 마치 헝클어진 머리채의 모습이다. 담쟁이 넝쿨과 칡넝쿨이 뒤엉켜 몸 하나도 빠져나가기 빠듯하다. 도심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풀꽃 나무들이 분지도를 지배하고 있다. 팥배나무와 작살나무, 금은화, 억새, 갯메꽃, 엉겅퀴, 닭의장풀 등 그리 귀하지 않은 식물들이다.
눈에 띄는 식생이 없는 데는 ‘방목한 염소들의 습격이 있었으리라’라는 짐작만이 오갈 뿐이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인 1970~80년대 정부는 농어촌의 소득증대로 염소방목을 지원했다. 마을별로 도망칠 수 없게 되도록 가까운 섬의 초지에 염소를 풀어놓고 길러 농어가의 소득으로 삼았다. 대단한 먹성을 가진 염소 떼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는 식성에 남아나는 것 없이 섬 전체가 초토화하기 일쑤였다
희한한 것은 아름드리 아까시나무가 작은 섬의 정상을 온통 뒤덮고 있다는 점이다. ‘그 외딴 섬에 누군가 일부러 아까시를 심었을 리도 없을 텐데…, 꽃씨가 날아와서 자랐나?’ 생각할수록 궁금증은 더해 갔다.
이왕 얘기가 나온 김에 아까시나무에 대해 잠시 알아보자. 식물학자들 가운데는 외래종인 아까시나무의 국내 첫 상륙지를 ‘인천’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일본인이 구한말 공원에 심을 요량으로 이 나무를 들여왔다는 것이다.
항구도시 인천은 외국인들의 접근이 쉬웠고,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 생길 정도로 외국의 문물이 가장 빨리 도입된 까닭이라고 설명한다. 하여튼 지금 공원으로 조성된 월미산에 어른의 아름을 넘는 크기의 아까시가 무성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절벽을 타고 내려가 작은 또 하나의 분지도로 발길을 옮기는 순간, 분지도가 특정도서로 지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튀어나왔다.
흔히 바다의 생명력을 빗대 ‘갯벌은 살아있다’라는 말로 표현하곤 한다. 그런 갯벌이 분지도를 감싸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제326호인 검은머리물떼새 수십여 마리가 구멍이 숭숭 뚫린 갯벌에 내려앉아 분주히 먹이 사냥을 하고 있었다.
조개와 게, 작은 물고기 등을 먹이로 삼고 있는 검은머리물떼새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분지도 갯벌의 생명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에 충분했다. 분지도와 그 갯벌은 인근 유인도인 주문도 사람들에게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삶의 자원이다. 바지락과 굴, 백합 등 해산물들을 용케 때를 맞춰 아낌없이 토해내기 때문이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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