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라디오 방송사 경인방송의 주요 주주들이 방송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이면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의 증거 효력이 인정됐다. 핵심 증거인 ‘주주 간 비밀계약서’를 인정한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경인방송 재허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912단독 반정우 부장판사는 지난 8일 “피고(조동성 경인방송 회장)는 원고(권혁철 전 경인방송 대표)에게 주식에 관해 양도의 의사 표시를 하고, 주식회사 경인방송에 기재 주식을 권혁철에게 양도한다는 취지의 통지를 하라”고 선고했다.
판결에서 언급된 주식은 경인방송 ‘주주 간 비밀계약서’ 관련 주식을 의미한다. 앞서 미디어오늘은 2023년 12월 경인방송 주요 주주 3인(조동성·권혁철·민천기)이 최다액출자자와 특수관계인이 소유한 지상파방송사 지분의 합이 40%를 넘을 수 없다는 방송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주주 간 비밀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2021년 3월 당시 조동성·권혁철·민천기 이사 3인은 주주 간 비밀계약서를 작성하고, 조동성 이사를 최대주주로 경인방송을 인수했다. 이들은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 합이 40%를 넘는 것을 숨기기 위해 권혁철 이사의 지분을 조동성·민천기 이사 지분에 분산해 방송사를 인수하고, 권혁철 이사를 대표, 조동성 이사를 회장으로 내세웠다. 3인 간 비밀 계약서와 추가 합의서에 따르면, 실제 조동성·권혁철 이사 지분 합은 52.36%였다. 방송법 제8조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사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소유하고 있는 지분은 40%를 넘어선 안 된다.
합의서엔 경인방송의 주식 인수 수량과 금액, 비밀 조항, 나아가 방통위 심사 통과 후 권혁철 전 대표의 실제 지분을 복원시킬 계획도 담겼다. 합의서에는 “주요 주주는 1항(별표1)에서 정한 취지에 따라 2항(별표2) 정한 거래가 있은 후 1년 이후부터 3년 이내에 권혁철은 경인방송의 주식을 조동성에게 9623주를, 민천기에게 6만8631주를 각각 무상으로 양도받을 권리를 갖는다”, “조동성과 민천기는 권혁철의 주식 양도 요구에 아무런 조건 없이 수락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조동성 회장은 권 전 대표의 비밀계약서에 따른 주식 이전 요청을 거부했고, 권 전 대표는 조 회장을 상대로 주식양도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권혁철, 조동성, 민천기는 2021년 3월2일 경인방송의 보통주 38만7248주를 양수하기 위한 주주 간 계약을 체결했다. 위 주주 간 계약 체결 당시 권혁철, 조동성, 민천기는 주주 간 계약서와 별도로 권혁철, 조동성, 민천기가 인수할 주식 수량, 인수 방법, 세금 등 경제적 부담에 관해 주주 간 추가합의서를 작성했다”며 계약서와 추가합의서의 효력을 인정했다. 계약서와 합의서의 구체적인 내용도 설명했다.
조동성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주주 간 추가합의서에 기초한 주식 증여 약정이 취소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조동성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권혁철이 조동성을 기망해 이 사건 증여 약정을 체결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경인방송 재허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해 1월 주주 간 계약의 위법이 드러나면 경인방송 재허가를 취소하겠다며 ‘조건부 재허가’를 의결했다. 같은 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통위는 (비밀 계약서를) 다 알고도 재허가를 내줬다”고 지적하자,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이 “고소 고발 결과가 오면 그 부분을 감안해 엄정하게 판단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조동성 회장은 지난 9일 1심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다. 조동성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경인방송에 “주식양도 소송과 관련한 주주 간 계약서와 주주 간 추가합의서는 기망에 의한 의심이 짙다”며 “항소심에서는 반드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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