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경현 기자] 이것이 레전드의 품격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둥지를 옮긴 저스틴 벌랜더가 등번호 선택에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벌랜더는 샌프란시스코와 1년 1500만 달러(약 220억원)에 계약을 맺었다. 메디컬 테스트도 통과했고, 이정후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벌랜더를 상징하는 등번호는 35번이다. 벌랜더는 데뷔 시즌인 2005년에만 59번을 썼고, 이후 18시즌 동안 35번을 달았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즈-휴스턴 애스트로스-뉴욕 메츠까지 모두 35번을 유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문제가 된다. 샌프란시스코의 전설 브랜든 크로포드가 35번을 달았기 때문. 크로포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13년을 뛰며 1404안타 147홈런 674득점 748타점 타율 0.249 OPS 0.713을 기록했다. 2012년과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을 보탰고, 실버슬러거 1회, 골드글러브 4회, 올스타 3회에 선정됐다.
2023시즌을 마치고 크로포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했다.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28경기에 출전해 타율 0.169 OPS 0.544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도 크로포드는 35번을 달았다.
미국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는 14일 “벌랜더가 등번호 선택을 위해 전 자이언츠 전설에게 품격 있는 제스쳐를 보냈다”고 전했다.
SI는 “벌랜더는 아직 어떤 등번호를 달 것인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지만, 경력 대부분 35번을 달았았음에도 여전히 논의 중인 것 같다”고 했다.
벌랜더에 따르면 버스터 포지 샌프란시스코 야구 운영 부문 사장이 미리 크로포드에게 연락해 35번 사용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미국 ‘NBC 스포츠 베이 에어리어’의 알렉스 파블로비치 기자는 “포지 사장의 연락을 받고 크로포드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벌랜더는 아직 35번을 쓸지 결정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크로포드와 이야기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포츠 선수에게 등번호는 제2의 이름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등번호를 양보한 선수에게 선물을 하곤 한다. 추신수도 SSG 랜더스로 이적한 뒤 17번을 양보한 후배 이태양(현 한화 이글스)에게 2000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선물했다.
벌랜더는 번호를 양보받는 것은 아니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크로포드의 위상이 거대한 만큼 예우하는 것.
한편 벌랜더는 통산 262승 147패 평균자책점 3.30을 기록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2006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왕을 시작으로 MVP 1회, 사이영상 3회, 평균자책점 1위 2회, 올스타 9회를 기록했다. 2017년과 2022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입단 기자회견에서 벌랜더는 “나에게는 여전히 열정이 있고,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라면서 “작년의 부진을 발판 삼아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앞으로 45세까지 공을 던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정후는 13일 미국 출국에 앞서 “벌랜더는 내가 어릴 때부터 존경한 슈퍼스타다. 그런 선수와 함께 뛰게 되어 기쁘다”라며 “수비, 공격에서 모두 벌랜더를 돕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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