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는 자연에 그만의 추상을 업는 작가다. 그는 주로 도심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그려낸다. 시멘트 사이나 아파트 화단, 혹은 공사장 펜스 사이에서 주로 마주친 식물이다. 작가의 화폭엔 식물이 틀에 억압되지 말고 자라고 싶은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성장하라는 메시지를 담는다. 그는 일상 속 자연의 흔적을 찾아 생명력을 담아내는, 도심 속에 뿌리내린 자연을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해 낸다.
작가는 생명력이 넘쳐나는 식물을 사진으로 포착한 후 실재의 자연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에도 추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받아들인다. 자연의 풍경을 재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생명의 에너지’라는 자연에 대한 추상 관념으로 인식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잔재와 함께 자라는 풍경을 그리며 식물이 가져다준 생명의 빛은 지치고 무력한 삶에 위안을 내포한다.
정연주는 장지에 혼합재료를 사용한다. 그의 작업엔 자연의 생명력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줘야 효과적으로, 자연의 깊이감을 보여주기 위해선 어떤 구도로 들어가면 좋을지 하는, 고민이 엿 보인다, 그가 행하는 두꺼운 한지는 물감이 스며 들어가기 때문에 물감의 레이어 층을 두껍게 올려야 색감이 진하게 보인다. 밑바탕을 먼저 어둡게 깔고 색을 쌓기 때문에 동양화 물감만으로는 색감을 바로 보여주기가 쉽지 않아 아크릴을 같이 섞어 표출한다. 그의 작품 「담장」은 길을 걷다가 담장 너머로 보인 거대한 식물 덩어리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버려둔 건지 담장 넘어 바닥에 그늘이 생길 만큼 크게 자랐다. 작가에겐 벽을 넘고 식물들이 자라고 쌓이면서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내는 모습이 가장 자유로운 날것의 자연 모습이었다. 그에겐 무관심 속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의 모습은 통제와 억압을 모르는 생명, 그 자체의 형상이다.
담장 넘어 식물이 쌓여가면서 응집된 덩어리는 깊고 잔잔한 생명의 울림을 주고, 개체마다 자라나려는 의지가 꿈틀대고 있다. 이를 표출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출발하는 작가의 색 한 점은 무의식적으로 연속되는 붓 터치로 중첩하며 채도와 명도를 높이고 중력에 의해 마구 흘러내리다 맺힌 비정형의 선을 거슬러 결국 들풀의 생명력을 강조한다. 더불어 밝은색이 쌓여가면서 식물의 공간감과 깊이감을 만들어 낸다. 작가는 식물이 자라는 형상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뒤집어 물감을 흘려내고 마른 후엔 다시 뒤집어 물감이 위로 흐른 것처럼 나타내고 은색을 물에 풀어 헤쳐 바른다. 정연주는 이러하게 자연이 자라나는 단계를 자연의 방식을 응용해 생명력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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