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무기로 떠오른 반도체 산업을 놓고 세계 각국 정부가 자국 기업 육성에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을 쏟아붓는다. 중국과 일본은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와 기업이 똘똘 뭉쳤다. 반면 한국 기업은 대통령 탄핵정국 여파 등으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2024년 5월 3기 반도체 투자 기금으로 3440억위안(약 64조원)에 달하는 대규모 자금을 조성했다. 미국 첨단 반도체 장비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설비 건설 보조금뿐 아니라 반도체 장비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까지 지원 대상을 확대했다.
정부 지원을 토대로 독자 기술개발에 사활을 건 중국 기업은 서서히 한국 기업을 옥죄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2024년 말 DDR5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DDR5는 DDR4 대비 두배쯤 빠르다.
기술 격차를 좁힌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는 범용 D램 제품 가격을 떨어뜨렸고 이는 삼성전자의 2024년 4분기 ‘어닝 쇼크’로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x8)의 평균 고정 거래가격은 2024년 7월 2.1달러에서 11월 1.35달러로 4개월간 35.7% 하락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2025년에도 인공지능(AI) 반도체와 범용 반도체 간 상반된 수요 흐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업체의 공급 확대에 따른 범용 메모리 가격 하락과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관세 우려 등으로 범용 메모리 제품 수요는 올해 상반기까지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반도체 부활을 꿈꾸는 일본도 과감한 정부 지원이 잇따른다. 일본 정부는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최근 3년 간 총 3조9000억엔(약 36조원)의 보조금을 풀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2024년 총리 재선출 후 기자회견에서 2030년까지 반도체·AI 분야에 10조엔(약 93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국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기업 ‘라피더스’에 정부 채무 보증이 가능하도록 법까지 개정할 계획이다.
라피더스는 도요타, 키옥시아, 소니,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대표 대기업 8곳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2022년 설립한 회사다.
정부 지원에 힘입은 라피더스는 최근 대만 TSMC가 압도적 1위를 달리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기술 격차를 줄여 틈새 시장을 노린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에 6월까지 2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시제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또 삼성전자 고객사 중 하나인 일본 스타트업 프리퍼드 네트웍스에서도 2나노 생산을 위탁받았다. 대만 팹리스 업체인 알칩(Alchip·世芯)과 유니칩(GUC·創意)과도 협업을 추진 중이다.
우리 정부도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이하 기업의 지원책은 ‘자급자족’에 가까운 수준이다. 특히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은 해를 넘겨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은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반도체 시설 투자에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동안 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지원했다면 앞으론 보조금 지급으로 투자와 경쟁력을 높인다는 것이 골자다.
삼성전자 사장 출신인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반도체 연구개발(R&D)은 미세공정, 고밀도 집적회로 설계 등 기술난도가 높고, 제품 개발 시 수율, 제품 경쟁력 확보를 위한 장시간 근무가 불가피하다”며 “고객별 개인화된 제품 개발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돼야 해, 핵심 엔지니어의 경우 근로시간 유연성 확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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