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동에서 발주한 싱크대 상판이 막 도착했대요. 원래 아침 9시 반까지 오기로 했는데. 금방 다녀올게요.” 박찬용은 신속히 3M 장갑을 꺼내 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가 사는 곳은 5층이고, 빌라엔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 오르는 소리와 함께 돌아온 그의 어깨엔 폭 1.8m짜리 스틸 상판이 얹혀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사람이나 장비가 오를 때마다 20만~40만 원은 깨져요.” 철거부터 인테리어를 거쳐 20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옮기기까지 몇 번의 오르내림이 있었을까. 속으로 그간의 노고를 가늠하다, 낑낑대며 옮긴 상판이 놓이자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하는 얼굴을 보고 그런 셈법은 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에스콰이어〉 〈아레나옴므플러스〉 등을 거친 피처 에디터이자 일곱 권의 단행본 저자. 에디터 박찬용은 〈첫 집 연대기〉를 통해 느지막이 독립한 30대의 우여곡절 집 고치기 에피소드를 전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연희동에 있는 1970년대 빌라를 매입해 최근 이사를 마쳤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방에 바닥·벽·화장실 공사를 감행했던 이력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두 번째 집 역시 고침의 정도와 경향이 예사롭지 않다. “대도시에서 고만고만한 형편을 가진 사람이 예산에 맞춰 효율적이고 만족스럽게 살 방법을 고민했어요.” 연희동 집은 이런 실험 정신에 근간을 둔다. 모든 자재는 직접 발주하고 시공 기술자를 별도로 고용했다. 인스타그램으로 찾은 젊은 가구 제작자 김원식(스튜디오 식목일), 서울시 집수리 닷컴을 통해 알게 된 동네 기술자 이성준 사장(어울림토탈인테리어)과 한 땀 한 땀 완성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집은 1971년 준공 당시의 평면을 계승한다. “대부분 비내력벽이라 평면을 완전히 새로 짤 수 있었지만, 주거 평면이 표준화되기 전 과도기 시절의 레이아웃을 보존하고 싶었습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건 다름 아닌 책장. 빼곡한 책의 협곡을 지나야 거실에 당도할 수 있다. 일종의 공간적 시퀀스이자 이 집만의 독특한 진입 절차다. “처음부터 거실은 서재로 쓸 생각이었어요. 특히 북향이라 좋았죠. 책이 바래지 않으니까요. 부모님과 살 때 제 방은 그야말로 ‘방이 책을 토해내는 꼴ʼ이었어요. 거실의 서재화는 과거 제가 느낀 울분의 반작용인 것 같습니다(웃음).”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나무로 덮인 모습은 콘크리트 외관에선 예상할 수 없는 반전 묘미다. 욕실을 제외한 모든 방, 싱크대와 붙박이장을 비롯한 고정 가구 역시 모두 목재로 완성했다. 개인적 선호도 있지만 경제적 이유가 컸다. 기존 벽지의 철거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벽지를 목재로 대체한 셈이에요. 현장 효율성에 맞춘 거죠.” 박찬용은 여러 번 효율을 언급했지만 이번 리모델링의 기준은 효율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효율과 비효율, 검약과 사치라는 극단을 향해 달린 결과랄까.
집을 이루는 재료만 봐도 그렇다. 바닥은 이탈리아산 원목, 벽과 천장엔 러시아산 자작나무, 현관 바닥엔 터키산 트래버틴, 욕실엔 이탈리아산 풀 보디 타일. 소위 말하는 수입산 고급 자재로 마감했다. 유행이 지나 수십 년간 방치된 ‘악성 재고’를 수소문해 원가보다 저렴하게 구입한 덕분에 가능했다. 가격보다 중요한 기준은 겉과 속의 일치였다. “시간이 갈수록 흉해지는 게 있고 반대로 멋스러워지는 게 있잖아요. 이런 재료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오로지 자신의 기준에 맞춘,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추종하는 태도도 럭셔리의 범주에 포함된다면 그의 집은 연희동 어느 집 못지않게 럭셔리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박찬용이 꼽는 최고의 사치는 걸레받이와 몰딩 없이 마감된 벽면이다.
“보통 인테리어 비용이 부담되면 가구에 투자하잖아요. 기왕 매입한 거주 공간이니 예산을 되도록 인프라에 쓰고 싶었어요. 공간을 이루는 모든 면이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진 모서리를 볼 때마다 얻는 만족이 큽니다.” 이례적인 취향의 유래를 묻자 스위스라는 의외의 답이 돌아온다. “스위스 출장 중 에어비앤비에 묵을 일이 많았어요. 넓지 않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잘 나눠 쓰고, 튼튼하고 좋은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문화가 인상적이었죠. 또 페터 춤토르의 공간을 보며 좋은 소재와 비례의 중요성을 절감했고요.” 돌아보면 한심한 결정도 많고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울 때가 많았던 과정이라 고백하지만, 삶은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른다. 몸과 마음, 시간과 자본을 들인 그 끝엔 어디에도 없는 ‘나의 집’이 남았다. 공간뿐일까, 집을 준비하며 들인 낡은 기물과 소품이 집 안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저마다 기구한 사연을 담고, 이 집을 위한 인장으로 거듭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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