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남북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시민들의 모임인 평화통일시민행동(대표 이진호)의 ‘2024평화통일시민강좌’를 연재합니다.
2024평화통일시민강좌는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하는 세계정세를 깊이있게 들여다 보고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과 군사력, 유엔사 부활의 문제점 및 5.18광주 항쟁과 미국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3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매월 1회, 서울시청 시민청 혹은 복합문화공간 종로 nuguna에서 진행됩니다.
아래는 지난해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스터디 카페 ‘누구나’에서 ‘전쟁기구 유엔사의 부활음모를 고발한다’를 주제로 이시우 사진가·평화활동가가 진행한 강연의 주요 내용입니다.
주일미군기지와 주한미군기지, 한국군을 연결하는 유엔사
한국군이 비무장지대를 관리하고 있지만, 비무장지대에 대한 법적 권한은 없다. 모든 법적 권한은 유엔사에 있다.
한국 기지인 대구 공군기지 입구에는 성조기와 유엔기가 같이 걸려 있다. 미군은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서 대구기지로 아무런 확인절차 없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미군 입장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국경이 없는 셈이다.
부산에서 제일 가까운 주일미군기지 사세보에도 유엔 깃발이 걸려 있다. 이곳은 한국전쟁 때 미군 함정이 가장 먼저 출발했던 곳이다.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 화이트 비치 미 해병대 기지에도 성조기와 함께 유엔기가 게양되어 있다. 유엔사는 한국에 있지만, 주일미군 기지에는 어김없이 유엔기가 있다. 유엔사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유엔 차원에서도 굉장한 골칫거리이며 한국보다도 일본에서 더 심각하다.
캠프 화이트 비치에는 미 핵잠수함이 기항한다. 하와이를 출발해 괌을 거쳐 이곳 캠프 화이트 비치를 거쳐 보통 진해로 들어온다. 최근에는 제주 강정을 거치기도 하는데 미 핵잠수함은 위 기지들을 기항지로 모두 활용하고 있다.
미 핵잠수함이 이동할 때 보통은 국경을 따라 구분하게 되지만 유엔사라는 이름을 쓰게 되는 순간 국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미국이 볼 때 유엔사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주한미군의 임무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상 한국 방위에만 국한되어 있고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은 법적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유엔사 깃발 아래에서는 아무런 문제없이 한국과 일본을 오갈 수 있다.
오키나와에서 미군기지 반대투쟁으로 가장 유명한 ‘헤노코’라는 지역이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가장 오랫동안 미군기지 반대 운동을 해 온 곳이다. 헤노코에는 미 해병대 사령부 캠프 슈와브가 들어올 예정이고 주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 반대싸움은 한일 공동의 문제로, 한국과 일본이 연대를 넘어 연합해서 싸워야 한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은 수식어가 아니다. 한미일은 유엔사라는 군사지휘기구로 통합되어 있다. 이미 일체화되어 있는 것이다. 아시아판 나토는 새로 만들 필요가 없으며 유엔사라는 이름으로 이미 굴러가고 있다. 현재 유엔사는 일본을 제외하고 18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다.
동일한 표식, 동일한 부두 구조
판문점으로 가는 길목에 미군기지 캠프 보니파스가 있다. 여기 탄약고에 3가지 표식이 부착되어 있는데 맨 왼쪽에는 주황색 팔각형 안에 숫자 ‘1’이 표시되어 있다. 이 표식은 화재표식으로 대량폭발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화재 발생시 소화 작업을 단념하라는 뜻이다. 숫자는 1부터 4까지 표시하여 4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전신 방호복 표시가 되어 있다. 화학위험도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방호복의 색깔에 따라 3가지 종류로 나뉘어진다.
빨강색은 사린가스와 신경가스 등 가장 유독한 화학무기를 나타내는데,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에는 빨강색 표식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미국은 1972년 하와이 존스톨 산초에서 전량 폐기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노란색은 사린가스보다는 치사성이 떨어지지만 여전히 생명에 치명적인 아담사이트 등이 포함된 화학무기를 나타내며 흰색은 백린탄 등의 무기를 나타낸다. 현재 주한미군기지와 한국군 기지 대부분의 탄약고에는 이 표식이 흰색으로 되어 있다. 한국은 1997년 화학무기 금지협약(CWC)을 비준하였으므로 이런 표식이 있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맨 오른쪽 표식은 양동이로 물을 붓지 말라는 표식으로 마그네슘이나 나트륨처럼 물을 만나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는 뜻이다. 캠프 보니파스에 구체적으로 어떤 폭발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표식으로 어떤 종류의 무기들이 보관되어 있는지 추정해 볼 수 있다.
일본 이와쿠니의 주일미군 해병대 기지의 탄약 표식을 보면 노란색 방호복이 있다. 이와쿠니의 미해병대는 보통 한미연합훈련 할 때 전방으로 와서 연습하는 부대다.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유엔사로 통합되면 아무런 장애 없이 왔다 갔다 하며 훨씬 더 편하게 연동되게 될 것이다.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부두에는 몇 가지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우선 큰 튜브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핵잠수함이 부두에 들어 올 때 쿠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를 캐몰이라 한다. 또 핵잠수함이 한 나라의 영해 안으로 들어올 때 만약의 사고를 대비해 원자로를 끄고 전기를 동력으로 쓰므로 부두에는 축전지를 충전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핵잠수함이 기항하는 일본 오키나와의 캠프 화이트, 진해, 제주 강정기지에는 이런 동일한 구조물이 있다.
유엔사의 점령지, 대성동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민간인 마을인 대성동 마을에는 유엔기가 있다. 대성동은 유엔사가 관리권을 가진 지역으로 유엔사의 점령지다. 대성동의 ‘민사행정에 관한 유엔사 규정’을 보면, 민사행정을 ‘미국 정부가 아군 지역에 있는 정부에서 행정을 수립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즉, 한국 정부의 행정권을 무시하고 미국정부가 대성동 마을의 행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민사행정이다. 또한 적국지역, 즉 38선 이북지역에 대해서는 행정권뿐만 아니라 입법권과 사법권까지 수립하는 것이 적국에서 시행하는 미국의 점령정책이다.
1943년 12월 22일 간행된 ‘미 육해군 야전교범 27-3(FM27-3)’은 민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민정은)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것이며, 국가정책을 추진하는 것이며, 국제법 아래에서 점령군의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목적 가운데 첫 번째 고려해야 할 점은 성공적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군사작전을 실행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필요는 군정의 운영보다 기본적으로 우선하는 정책이다.’
민정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민간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민간인들을 통제하는 것이다.
1907년 헤이그 국제법의 지상전에 관한 규칙에서 ‘점령’은 적국에 대해서만 규정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과 독일은 항복했기 때문에 세계대전 종결 당시 적국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일본과 독일에 대해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군정을 실시했다.
이것은 국제법 위반이었고 미국도 이 문제를 알고 있었다. 미국은 자신들만의 해석을 가지고 독일은 1955년까지, 일본은 1951년까지 점령을 실시했다. 미국은 이 관행을 가지고 아군지역인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점령정책을 실시했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유엔사는 대한민국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민사행정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한국의 헌법체계로 봤을 때 반국가단체다. 헌법재판소에 소를 제기하려고 했지만, 헌법재판소는 국내 단체에 대해서만 관할권이 적용되어 이를 포기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2조는 반국가단체의 범위를 ‘국내외 단체’로 정하고 있다. 유엔사는 헌법이 아닌, 국가보안법에 의해서만 ‘반국가단체’로 규정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전투기구로서의 유엔사
전투기구로서의 유엔사는 1975년 유엔총회에서의 유엔사 해체 결의 이후 끝났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군을 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사라지게 되므로, 미국은 한미연합사를 창설해 전쟁기구로서의 기능은 한미연합사로 넘기고 유엔사에는 정전협정 관리 권한만 남기게 된다. 한미연합사는 현재 용산과 평택에 분산되어 있으며 미군이 사령관을, 한국군이 부사령관을 맡고 있다.
그러나 미 합참과 유엔사는 전쟁기구로서의 유엔사를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1983년 미 합참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하달한 ‘”유엔군” 사령관을 위한 관련 약정’을 보면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유엔사”는 예속된 모든 부대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가용할 경우 제3국군을 “유엔사” 구성군 사령부에 예속하고 필요시 적절한 미군부대에 배속시키며, 적대적 분위기가 다시 고조될 경우 “유엔사”와 연합사를 독립된 법적, 군사적 기관으로 유지하며 “유엔군”을 활용한다.
이 약정은 이후 조금씩 추가되어 왔으며 내용은 비공개이다. 하지만 큰 틀은 유지하고 있다. 위 약정을 보면 유엔사가 전쟁기구로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유지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미연합사가 작전권을 한국군에 이양한다 해도, 유엔사가 한국군을 지휘통제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전작권 환수 노력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
2005년경, 노무현 정부에서 전작권 환수를 추진할 당시, 연합사를 해체하고 전작권을 돌려받을지, 유엔사를 해체하고 전작권을 돌려받을지 논쟁이 있었다. 결국 연합사 해체로 전작권을 돌려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현재 유엔사가 전쟁기구로 부활 되면서 전작권 환수 노력은 헛수고가 되고 있다.
정전시 유엔사의 관할권 ① 영토
유엔사의 관할권은 정전시, 위기시, 전시 3개로 구분한다. 정전시는 현재의 상태다. 흔히들 전시와 평시로 구분하나, 한국은 정전상태이기 때문에 ‘평시’ 는 틀린 개념이다. 평시는 평화조약이 체결되었을 때를 말하므로,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우리는 정전 상태에 있다.
정전시 관할권에서는 영토와 영해, 영공에 관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영토는 38선 이북, 군사분계선 이남이 문제가 된다. 38선은 1945년 해방 당시, 미소가 합의한 위도 38도 선을 말하며 군사분계선은 휴전선, 즉 1953년 정전 당시 쌍방군이 접촉하고 있는 선을 일일이 조사해 연결한 선이다.
1950년 10월 1일, 38선 이북으로 유엔군이 진격하게 되자 유엔은 10월 7일, 유엔이 만든 언커크(UNCURK,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를 통해 38선 이북지역을 통치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다.
언커크 구성에 한 달 정도 소요되었고 유엔군은 압록강까지 가 있는 상태였으므로 언커크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에 북한지역 점령통치자가 필요했다. 이때 미국이 언커크의 한국 도착 전에는 유엔사가 점령통치 할 것을 결정해 버린다. 이를 통해 유엔사는 38선 이북지역, 현재의 북한지역에 대해 유엔사령관이 통치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엔사의 이러한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언커크는 11월 21일에 한국에 도착하였고, 언커크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만 유엔사가 점령권을 가지기로 하였으므로 21일 이후 유엔사의 점령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엔사는 여전히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이남, 38선 이북지역을 ‘수복지역’이라고 한다. 전쟁 전에는 북한 주민들이 살고 있던 지역이다. 전쟁 기간 이 지역 주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가 생겼고 일단 모두 내려보냈다. 전쟁이 끝나고 나니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주민들이 생겨났고 대규모 민원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호적정리나 토지문제 등이 생기는 것이다. 유엔사는 이런 행정업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1954년 11월 한국정부에 행정권을 이양한다.
당시 한국정부로의 행정권 이양시 유엔사령관 헐(J.E. Hull)이 이승만에게 보낸 공문은 다음과 같다.
‘”유엔사”는 지금 “유엔사”의 군사점령아래(under military occupation by the UNC) 있는 38선 북쪽지역을 한국의 행정권(administrative control)아래 이양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
유엔사는 수복지역을 점령하고 있으며, 이때 당시 행정권만 이양하고 입법, 사법권은 넘겨받지 못했다. 이 지역은 1957년까지 국회의원 선거도 시행되지 않았으며 국민이 대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인 사법권도 없었다. 당시 강원도지사가 최종 대법관 역할을 했는데 다른 지역의 도지사는 이승만이 지명했지만 강원도지사는 유엔사가 지명했다.
1954년 11월 17일의 행정권 이양은 군사분계선 이남 2km의 비무장지대는 빼고 비무장지대 남쪽부터 38선 이북지역에 해당했으며 비무장지대 안쪽의 대성동은 행정권을 이양받지 못했다. 대성동 주민들은 67년까지 대성동 마을에서 투표 하지 못했다. 그전까지 주민들은 군용트럭을 타고 문산까지 나와서 투표를 하고 다시 들어가야 했다. 투표율이 100%였다.
1967년부터 대성동 마을에 투표함이 설치되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입법권과 사법권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범죄가 발생하더라도 유엔사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경찰이 바로 출동할 수 없다.
정전시 유엔사의 관할권 ② 영해
미군이든 유엔사든 NLL을 그은 적이 없다. 한국 정부만 NLL을 주장하고 있다. 영해에는 작전허가구역이라는 것을 통해 유엔사가 허가하지 않으면 작전을 못하게 되어 있다. 현재, 작전허가구역은 한국군한테 모두 넘어와 있는 상태로 영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전시 유엔사의 관할권 ③ 영공
유엔사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있다. 정전협정 17항에 따르면 비무장지대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사령관, 남측의 경우 유엔사령관한테 있다. 비무장 지대 아래쪽의 민통선은 한국군이 관리한다.
그러나 유엔사는 군인수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비무장지대 상공을 다 관리할 수 없으므로 1군단과 3군단에 위임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이남부터 민통선 상공까지 비행금지구역이 P518이다. 대북 전단 풍선은 민통선 아래, 즉 접경지역에서 날린다. 민통선은 검문을 통과해야 하므로 들어가지 못한다. 접경지역은 군인이 아닌, 정부가 관리한다. 접경지역은 경찰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 몰래 전단을 날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북전단 풍선은 3개 지역을 통과해야 한다. 민통선에 있는 P518 비행금지지역,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야 북한으로 진입할 수 있다. 따라서 경찰 직무법만 개정해서는 대북전단을 막을 수 없다. 군대가 민통선 상공을 날아가는 풍선은 조준해서 떨어뜨릴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민통선을 통과하여 비무장지대로 날아가면 유엔사가 떨어뜨려야 한다. 1군단, 3군단에 위임을 하였으나 최종책임은 유엔군사령관에게 있다.
현재 상임위에 올라와 있는 대북전단 금지법은 접경지역 하늘만 다루고 있고 민통선, 비무장지대 하늘은 다루고 있지 않다. 대북전단 살포를 경찰이 통제하게 하느냐, 통일부 장관이 통제하느냐만 다루고 있지 정작 군을 통제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 유엔사는 국내 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유엔사를 통제하는데는 한계가 있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유엔사가 최종적으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유엔사의 위기시 관할권
유엔사는 위기시 관할권이라는 것이 있다. 미국이 ‘위기’라는 시기를 따로 구분하고 있는지 우리는 몰랐었다. 전시와 정전 사이에 ‘위기시’가 있고 미군은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 ‘위기시’를 일관되게 적용해 왔다.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정전 이후 한국에서 터졌던 군사위기 사건은 ‘위기시’에 해당한다.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21 김신조 부대 침투건, 69년 EC-121 정찰기 격추사건,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벌채사건은 모두 위기시 사건이다. 전시가 아니라 전시로 넘어갈 뻔한 ‘위기시’ 사건이었다.
‘전시’는 사령관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전쟁을 수행하면 되지만 ‘위기시’는 위기 상태가 전쟁으로 발전될지, 평화상태로 수습될지에 대해 군사적 시스템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시스템이 모두 작동한다. 위기조치 향방에 따라 미 국방부, 미 국무부를 거쳐 백악관까지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판단과 군사적 판단을 모두 검토하는 매우 복잡한 시기가 ‘위기시’이며 위기 관리권이 유엔사령관에게 있다. 만약 연평도에서 남북 충돌이 발생하면 일단 위기조치를 하고 그 다음에 발전된 위기조치, 더 발전하면 전시로 가게 된다. 여기에서 맨 처음의 위기 조치를 취하는 권한이 유엔군사령관에게 있다.
2002년 6월 18일 연평해전이 터졌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벌써 전쟁이 나서 남북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에서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국군 통수권자라고 해도 이미 벌어진 전투를 당장 멈추라고 할 수는 없다. 한번 시작된 전쟁은 막기 어렵다. 그냥 굴러가는 것이다. 전쟁 시스템이 그렇다. 위기조치가 시작되면 대통령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노무현 대통령이 반환받으려고 했던 것은 전시 관할권이 아닌 위기시 관할권이었다. 전시는 연합사 구조에 따라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이 사인하면 된다. 형식적으로는 공평한 구조다. 문제는 위기시다. 한국의 대통령이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이 위기시를 규정하고 위기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었으므로 위기시 관할권을 한국군이 가져가는 것이 전작권 반환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전작권 반환 과정에서 위기관리권을 누가 가지느냐는 합의가 되지 않았다.
한국군은 위기절차가 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미군만 쳐다보다가 미국이 결정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 후 위기시에는 백악관과 대통령실이 각각 회의를 연다. 미국이 공개한 외교문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위기조치에 들어갔을 때 백악관에 누가 참석하고 무슨 과정이 논의되는지, 어떤 법적 검토를 통해 위기조치를 통제하는지 알 수 있다.
과거 푸에블로호 사건이나 EC-121 격추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헨리 키신져가 국무장관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일본 기지 사용 여부를 검토했었다. 현재는 백악관이 위기초지를 결정하면 유엔사, 한미연합사를 통해 미군들이 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 과정에 한국이 개입하거나 논의할 수 있는 구조는 전혀 없다.
2022년 12월, 용산 상공으로 북한의 드론이 날아왔다가 돌아갔을 때, 남한이 즉시 평양으로 무인기를 보냈다고 공표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유엔사가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10월 북한이 평양 상공에 남한이 드론을 침투시켰다고 밝히자 유엔사가 또 조사에 들어갔다. 한국군이 전방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여 자기 판단 기준으로 조치를 했을 때, 유엔사가 조치를 못하게 막는 것이다.
전시작전권을 돌려 받으면 위기시 대처에 대해 한미 각각의 메뉴얼을 통합시켜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전시작전권이 반환되면 한국군이 사령관을 맡고 미군이 부사령관을 맡는다. 2020년 용산 벙커에서 한미가 시뮬레이션으로 한국군이 미군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는지 검증하는 훈련이 진행되고 있을 때, 당시 한미연합사령관이던 에이브럼스가 자신은 주한미군사령관, 한미연합사령관이기도 하지만 유엔사령관이기도 하므로 한국 사령관한테 지휘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였던 이때부터 전작권을 두고 한미 간 갈등이 표면화되고 미국은 유엔사 재활성화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유엔사의 전시관할권 ① 개전권
우리에게는 개전권이 없다. 1900년대 이전까지는 전쟁선포를 하고 전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1945년 유엔 창설 이후로는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시작하면 그 나라는 전범국가가 된다. 유엔은 전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유엔헌장은 부전(不戰)조약 전통에 입각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유엔은 2조 7항에서 유엔 안보리가 군사조치를 결정했을 때에만 헌장에 따라 합법적인 전쟁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1945년부터 현재까지 유엔 안보리는 군사적인 조치를 결정한 적이 한번도 없다. 유엔이 조치하는 ‘제재’가 가장 강력한 조치다. 그러나 유엔사는 1950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한 참전 결정이 아직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유엔사는 유엔 결의 없이 정전상태인 한반도에서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유엔사의 전시관할권 ② 일본기지 사용권
유엔사령관은 전쟁에 돌입하면 주한미군과 한국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까지 자기 휘하에 편입시키게 된다. 주일미군사령관은 평시엔 태평양사령관의 지휘를 받지만 한반도에 전쟁이 발생하면 “유엔사령관”의 지휘를 받게 된다.
유엔사령부는 평택에 있지만 일본에 7개의 후방기지가 있다. 한국은 유엔사의 전방기지이다. 7개의 후방기지 사령부가 움직이면 예하의 모든 부대들이 함께 움직이게 되어 있다. 작년 윤석열 대통령은 8.15경축사에서 유엔사 후방기지를 두번이나 언급했다. 유엔사를 활용해 일본까지 끌어들이면 북한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확고하게 심어주었다.
1951년 9월 8일, 일본의 요시다 수상과 미국의 애치슨 국무장관 사이에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이 체결되었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미일 안보조약과 함께 체결된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은 일본정부가 한국에서의 유엔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시설과 건물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약에 따라 1954년 “유엔사” 행정협정이 체결되었고 이에 따라 7개 후방기지 사령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요시다 애치슨 교환공문의 대전제인 한국에서의 군사작전은 ‘유엔의 활동’이 아니며, 유엔의 군대라는 의미에서 “유엔사령부”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유엔의 활동이 아닌 회원국의 활동일 뿐이며, “유엔사”가 아닌 미국통합사령부일 뿐이다. 따라서 요시다-애치슨 교환공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합의한 유엔 활동의 지원의무와 일치하지 않는다.
유엔사의 전시관할권 ③ 자위대 동원권
유엔사 통제 아래 일본 자위대가 한국전쟁에 동원, 개입할 수 있다. 이 역시 요시다 애치슨 교환 공문에 의해 규정된다. 일본은 유엔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시설’뿐만 아니라 ‘역무(Service)’까지도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군대병력이라 하지 않고 역무라고 한 것은 자위대가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50년 원산상륙작전 때 일본의 소해부대가 맥아더의 명령으로 파견되어 전투에 참가했다. 1950년대 당시 일본은 군대가 없었다. 맥아더 사령관이 2차 대전 이후 흩어졌던 군인들을 끌어모아서 소해부대를 만들었다. 소해부대는 기뢰를 제거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위대가 유엔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한국에 들어올 수 있다.
유엔사의 전시관할권 ④ 점령권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영토로 규정하고 있고 이 헌법에 따라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은 반국가단체가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국가보안법의 근거다. 헌법에 따르면 북한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당연히 한국정부가 각 도시의 행정권을 접수해야 한다. 서울은 평양을 접수하고 부산시는 함흥시를 접수하는 식이다.
매년 8월 시행되는 ‘을지훈련’은 남한의 각 도시들이 북한의 도시들을 하나씩 선정하여 행정권을 접수하는 절차를 훈련하는 것이다. 한국 법체계에 따르면 통일부 장관이 충무계획을 총괄하므로 북한지역의 총독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유엔사는 한국전쟁 때나 지금이나 북한 점령지역에 대한 총독은 유엔사령관이라 주장한다. 일본도 유엔사의 논리에 따라 1965년 한일협정에서 북한은 한국정부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므로 일본정부는 대한민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북한과 협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는 이를 반대했고 그 결과 한일협정에는 애매하게 내용을 넣어놓았다.
만약 유엔사가 한국전쟁에서 자위대를 끌고 들어오면 유엔사뿐만 아니라 자위대도 북한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유엔사가 전쟁기구로 부활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한국 헌법에 배치된다.
유엔군의 법적 지위 문제
유엔사와 일본은 소파(SOFA, 주둔군 지위협정)를 맺었다. 한국은 미군과는 소파를 체결했으나 유엔사와는 소파를 체결하지 않았다. 캐나다나 호주가 유엔사에 군인을 보내거나 한미연합군사훈련에 유엔사의 이름으로 미군 이외에 나라들이 참가하기도 한다.
미군의 핵잠수함이 부산에 기항하여 미군이 부산시를 돌아다니면 방문군지휘협정에 의해 문제가 생기더라도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유엔사와는 이런 협정이 없기 때문에 캐나다, 호주군이 한국을 돌아다니다 문제가 생기면 다 불법이 된다.
일본과 유엔사가 맺은 주둔군 지위협정, 미일 안보조약은 대상을 한반도뿐 아니라 극동지역으로 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여 대만 위기시 주일미군이 출동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 올림픽 개막 하루 전에 캐나다 벤쿠버에서 유엔사 소속 외무장관이 모여 대북제재 강화를 주장하며 한반도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다. 당시 중국은 이 회의가 북한에 대한 무력동원 신호나 다름없다며 극렬하게 반응했다.
사실 1950년 1월은 한국전쟁보다 중국에서 전쟁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일본 사세보에 미 7함대 항공모함 3대가 들어왔고 이때 미중간 긴장이 매우 높았다. 중국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중국과 무관하지 않게 될 것임을 알았다. 중국은 전쟁기구로서의 유엔사의 부활을 아시아판 나토로 보고 있고 이를 매우 경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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