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두 번째 체포영장 집행을 앞둔 주말인 11일, 시민들은 광장에 모여 12·3 내란 사태 이후 이어 온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회복’을 다시금 강조하고 나섰다. 적법절차를 거부하며 버티기에 나선 윤 대통령, 이에 동조하는 여당과 지지자들의 극단적인 주장 앞에 물러설 수 없는 상식적인 사회의 회복을 한층 절박하게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윤석열 즉각 체포·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총궐기대회’(범시민총궐기대회)를 열었다. 동십자각부터 경복궁 고궁박물관,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500여미터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 20만명(주최 쪽 추산, 경찰 비공식추산 1만5천명)은 한 목소리로 윤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을 촉구했다. 시민들이 저마다 만들어 온 손팻말에는 ‘사람도, 동물도,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함께하자’ ‘소수자 차별을 묵인한 결과가 윤석열’ 등 내란 사태와 이후 시민 집회에서 깨달은 다채로운 민주주의 의미를 적은 문장이 적혔다.
집회에 참여하려 모인 시민들은 윤 대통령의 체포 영장 집행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나온 여당과 지지자들의 황당한 주장에 우려를 쏟아냈다. 조아무개(57)씨는 “우리는 교통 범칙금만 받아도 마음이 불편해 어떻게든 해결하려 하는데, 법을 공부했다는 대통령이 법 절차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지키라고 선동하는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가장 걱정되는 건 지지자들을 결집해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며 “어떻게든 윤석열 대통령은 처단을 받겠지만 그 이후 회복해야 할 상황이 감이 안 잡힐 정도로 극우화된 목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됐다”고 했다.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목숨을 잃은 강경대 열사의 91학번 동기라는 최은아씨는 무대에 올라 “반국가세력이라고 딱지를 붙이고 반공을 내세우면 어떠한 폭력도 전쟁까지도 과연 허용할 수 있는가”라며 “내란 주범과 공범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다시 공권력을 장악하여 국민에게 총부리 겨누고 전쟁까지도 불사할 것이 분명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이 비상식적인 상황과 주장에 맞서기 위해 꺼내든 건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염원이었다.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이한빛 피디(PD)의 동생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활동가는 “혹한의 날씨에도 우주 전사 키세스 동지들은 한남동 거리를 지켰고, 이 자리에도 남녀노소 한결같이 함께해 주고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며 “백골단이라는 단어까지 다시 등장한 세상이지만 한탄만 하지 않겠다. 내일의 청년들에게는 불평등, 차별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싸우겠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안민하씨는 “내란 세력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로 사회를 이간질하고 저희의 결속을 끊어내려 발버둥친다”며 “혐오는 쉽고 다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순간이야말로 다정해야 한다. 다정함은 누구도 깎아낼 수 없는 우리의 본능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가수 옥상달빛도 이날 무대에 올라 “상처받은 여러분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위로해 드리고 싶다”며, 대표곡 ‘수고했어 오늘도’를 부르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1인분하러 왔습니다’, ‘사료값 벌다 뛰쳐나온 전국 집사노동조합’ 등 집회의 상징이 된 각양각색 깃발이 노래의 사뿐한 리듬에 맞춰 나부꼈다.
집회를 마친 뒤 행진에 나선 시민들은 로제의 ‘아파트’, 지오디의 ‘촛불 하나’ 등 대중가요에 맞춰 형형색색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명동을 향해 걸었다. 행진은 종각역에서 명동을 향하던 중 경찰 바리케이드에 막히며 잠시 갈등 조짐이 일었으나, 큰 충돌은 없이 마무리 됐다. “어떤 일에도 함께 연대하고 나누고 챙겨주는 마음이 뜨겁게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 마음으로 다음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다시 만나자”는 사회자 발언에 이어,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서울 도심에 울려퍼졌다.
한겨레 김가윤, 박고은 기자 /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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