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완성차 제조사 비야디(BYD)의 기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중국산 전기차의 질주를 틀어막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전기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어 무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에너지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 세계에 등록된 전기차가 전년 동기 대비 25.9% 증가한 1559만1000대로 집계됐다.
특히 전기차 수요 둔화와 글로벌 불확실성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도 비야디는 내수와 해외에서 호실적을 기록하며 367만3000대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전년 대비 43.7% 늘어난 실적이다. 이 같은 실적은 모델인 ‘돌핀’과 ‘아토3’의 판매 호조가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비야디가 맹렬한 질주를 한 것과 달리 전기차 시장의 터줏대감이었던 미국 테슬라는 158만3000대를 판매하며 2% 역성장했다. 특히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 각각 12.9%, 7% 감소한 실적을 기록했다.
전기차 판매량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제조사 역시 중국이었다. 중국 지리그룹은 122만5000대를 판매하며 테슬라를 추격했고 상하이자동차는 90만2000대로 4위에 올라섰다. 또 창안자동차는 59만7000대로 6위에 안착했다.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가 심상치 않자 유럽연합(EU)은 중국에서 유럽연합으로 수출되는 전기차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대응에 나섰다. 유럽연합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반보조금 조사를 통해 지난 10월 30일부터 중국에서 유럽연합에 수출되는 전기차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적게는 17.8%, 많게는 45.3%까지 인상을 결정했다. 중국 전기차의 공세를 저지하며 자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점유율을 높이겠다는 방안인 것이다.
유럽연합의 관세 인상 결정으로 중국 전기차는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관세 인상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해 11월 전기차 수출액을 보면 15억8000만달러(2조3161억원)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 감소했다. 이는 14억달러(2조522억원)을 기록했던 2022년 7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수출 물량도 같은 기간 대비 19%나 줄었다.
유럽연합으로의 전기차 수출액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36% 줄었고 수출 물량은 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량옌 미국 월래밋대 경제학 부교수는 “중국 전체 전기차 수출액 중 유럽연합이 차지하는 비중은 4분의 1 수준이다”며 “유럽의 높은 관세 정책이 수출 감소 및 수출액 감소의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적신호가 켜졌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00% 올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지속적으로 중국에 엄포를 놓고 있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 관세를 부과하고 최혜국 대우 지위를 철회하겠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사실상 비야디를 비롯한 중국산 전기차의 목줄을 틀어쥐며 유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이 자동차 제조업을 미국으로 가져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중국산 자동차마다 100~200%의 관세를 매길 것이다”며 “취임 2주 내 중국 자동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중국은 미국에서 자동차를 팔지 못하게 될 것이다”고 거듭 강조했다.
최근에는 미국 국방부까지 제동을 걸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 CATL을 ‘1260H’라 불리는 중국군사기업(CMC) 명단에 올린 것이다. 1260H CMC 명단은 중국 정부의 민군 융합 전략에 따른 중국군 현대화를 저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다. 이 명단에 이름이 올라갈 경우 향후 미국 투자가 금지되거나 미국 기관 및 업체와의 거래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CATL은 세계 최대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테슬라에 리튬인산철(LEP) 배터리를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중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테슬라 네바다 기가팩토리에서 기술제휴 LEP 배터리도 생산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CMC 명단에 추가되면서 사업에 차질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가 경우에 따라 CATL뿐만 아니라 관계사인 테슬라에게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CATL은 CMC 명단 추가에 대해 “중국군 현대화 활동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미 재고를 요청할 것이다”고 입장을 내놨다. 반면 테슬라는 해당 내용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비야디의 한국 승용차 시장 진출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국 정부도 유럽연합과 동일하게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도입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보조금 등 부당한 상대국의 산업 정책을 문제 삼아 상계관세를 부과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이 특정 수출 산업에 대해 장려급이나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경우 수입국이 해당 수입 상품에 대해 보조금에 해당하는 만큼 부과하는 관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국내 산업 이해관계자 등이 보조금 조사 신청을 한다면 보조금 협정과 관세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고 말했다.
각국에서 중국 전기차 유입을 틀어막으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평가다. 관세를 비롯해 CATL이 CMC 명단에 포함되면서 테슬라의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또 최근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미국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이름을 올리면서 판매량을 확대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 1일 현대자동차 아이오닉 5, 아이오닉 6, 아이오닉 9과 기아 EV6, EV9,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 총 5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은 지난 2023년에도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된 적이 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면서 미국 내에서 해당 차량을 구매할 경우 최대 7500달러(11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과 미국에서 높은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중국산 전기차의 질주에 적신호가 켜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국 국방부에서도 CATL을 CMC 명단에 포함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산 전기차가 저지당하면서 현대차그룹은 반사이익을 분명히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올해 또 한 번의 혁신을 예고한 만큼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 높이기 위해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