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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대신 전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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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지금, 생애 마지막이 될 임신 기간을 보내고 있다. 새해가 되면 또 다른 작은 손님이 우리 집에 찾아올 예정이다. 얼마 전 남편 다니엘이 말했다. “옆에서 두 번의 여정을 지켜본 바로는 이번엔 마치 임신하지 않은 것처럼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물론 당연히 힘들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신발을 신기 위해 허리를 굽힐 때 ‘끄응’ 소리가 나고, 똑바로 누워 자기 때문에 배가 무거워 모로 누워 자야 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스스로 임신했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여전히 아기인 첫째 아리아가 동생을 만나면 어떨지, 새벽에 한 아기가 울면 다른 아기가 따라 울지는 않을지, 한 아이에게 힘껏 쏟았던 마음이 두 개로 나눠질지 두 배로 불어나게 될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예정된 변화 앞에 심적으로 꽤 평온한 이유는 14개월 동안 한 아이를 키우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게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육아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
첫아이인 아리아를 낳기 전에 읽었던 유일한 육아 서적은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인 파멜라 드러커멘의 베스트셀러 〈프랑스 아이처럼〉이었다. 영국인 남편과 같은 속도로 읽기 위해 나는 한글 번역판으로, 다니엘은 영문으로 된 책을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읽으며 부모가 될 우리 모습을 상상했다. 레스토랑에서 아이 밥을 먹이느라 허둥지둥하는 대신 아이는 스스로 밥을 먹고 어른은 그들의 속도대로 우아하게 식사 시간을 보내는 것이랄지, 새벽에 아이가 운다고 곧바로 달려가지 않고 스스로 잠들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뭇 ‘쿨’해 보이는 양육 방식에 밑줄을 그으며 나 역시 그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산후조리원을 나와 집에 온 첫날 새벽부터 허둥지둥했다. 아이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한동안 짧은 산책을 나가는 것도 망설였고, 아이의 울음소리에 무너져 결국 ‘못할 짓’이라며 수면 교육 포기를 선언했다. 밤엔 아이 침대 아래 매트를 깔고 잠을 잤다. 내가 쏟을 수 있는 사랑을 다 쏟는 방식이었고, 대가가 따랐다. 아침 생방송을 비롯한 업무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그동안 단련된 정신력과 체력 덕분. 감정도 널을 뛰었다.
육아 방식이 차차 바뀌기 시작한 건 지난여름 한 달간 영국에 머물면서부터다. 한국에서는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실 바닥을 하루에 한두 번은 물걸레로 닦고 멸균실 수준으로 위생에 신경 썼지만, 어른이 신발을 신고 걸어 다니는 카펫 위로 아이들이 기어다니는 것이 이곳의 문화 아닌가. 늘 한국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다니엘처럼 나도 영국에서는 그 방식을 따르려 했지만, 결국 납득하지 못한 채 울상으로 털어놓았다. 다니엘이 말했다. “그 마음 이해해. 그런데 생각해 봐. 나도 이런 방식으로 컸고 영국, 미국, 호주의 거의 모든 아이가 이런 환경에서 자랐는걸. 정말 잘못된 방식이었다면 그럴 수 없지 않았을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한 달간 카펫 위를 누비고 뒹굴던 아리아는 변함없이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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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다녀온 베트남은 어떻고. 오토바이들이 점령한 도로 위에선 신호등이 무용지물이었다. 이렇게 위험해 보이는 환경에서 아이들은 괜찮을까 싶었는데, 하교 시간이 되자 오토바이 앞뒤로 아이들을 태워 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아기띠를 하고 오토바이를 모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눈에는 기겁할 장면이었지만 이 역시 이곳의 문화라면 문화였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아이들의 면역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한겨울에도 유모차를 밖에 두고 커피를 즐기는 부모들이 있다고 한다. 한 나라 안에서도 세대 간의 생각은 또 얼마나 다른지. 겨울이 되면 내 윗세대의 어머니들은 아기를 포대기로 꽁꽁 싸매지만, 젊은 엄마들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완벽한 육아 방식도, 최고의 육아법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깊이 체감한 경험이었다. 모든 건 상대적일 뿐.
물론 경험해 보기 전엔 대다수가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적어도 그 방식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닐 거라는 보장이 있어 보이니까. 하지만 양육자는 적당히 귀를 닫아야 한다. 정답을 버리고 대신 전략을 갖자. 전략이 없다면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도 결국 미안해지고 만다. 마케팅의 유혹에 넘어가 한두 번 쓰고 창고로 직행할 물건을 쌓아두는 것도 물론이다. 전략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일단 내가 맞다고 생각한 방식을 아이에게 적용해 보고, 아이의 성향과 반응을 관찰하며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보길. 우리가 인생을 찾아가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진학도, 취업도, 결혼도 남들이 흔히 하는 대로 안전하게만 따라가서는 진정한 내 삶을 살 수 없으니까.
얼마 전 번번이 그만두었던 아이의 수면 교육을 다시 시작했다. 책에서 말하는 수면 교육의 방식을 완벽하게 따르려는 대신 조금 느려도 천천히 우리 방식으로 변형해 아리아와 보폭을 맞춰갔다. 어느 날 신기하게 스스로 잠든 아리아를 보며 깨달았다. ‘아리아는 이미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었구나’라는 걸. 그렇게 여유가 생기니 육아가 드디어 재미있어졌다.
새해의 내 육아 전략은 ‘밀도’다.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3개월의 출산휴가가 끝나면 회사로 돌아갈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은 아이들과 힘껏 부대끼되 출근 시간이 되면 일말의 미안함 없이 밖으로 향할 것이다. 점점 엄마 품을 알아가는 아리아가 어느 날부터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 훌쩍이기에 이렇게 속삭였다. “아리아, 엄마 일하고 올게. 엄마가 계속 같이 있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나중엔 아리아도 엄마가 출근하는 걸 좋다고 말할 거야. 다녀와서 만나자, 사랑해.” 아리아는 눈물을 멈추고 작은 손을 흔들며 ‘빠이빠이’를 해주었다. 아이는 엄마의 눈빛과 말투, 마음을 이해한다. 그럴 수밖에. 우린 한 몸으로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으니까.
작은 인간을 완벽하게 키운다는 마음 대신 아이가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돕는 일, 그게 육아였다. 정답이 없는 게 어디 육아뿐일까. 새해 내 삶의 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정답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해체하고 내 방식을 찾아가는 것. 그러니까 정답 없이 살기.

임현주

듣고, 쓰고, 읽고, 말하는 MBC 아나운서.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신중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지런한 나날을 담은 책 〈아낌없이 살아보는 중입니다〉 〈우리는 매일을 헤매고, 해내고〉를 펴냈다. 워킹 맘으로 새로운 삶에 도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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