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LG전자가 지난해 4분기 나란히 ‘어닝쇼크’를 기록했다. 양사 모두 시장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영업익을 기록한 것인데 삼성전자는 캐시카우인 반도체 사업의 부진, LG전자는 물류와 일회성 비용 증가가 발목을 잡았다. LG전자의 경우 자회사 LG이노텍 실적을 제외하면 적자를 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8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및 연간 잠정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75조원, 영업익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65%, 130.5%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전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5.18%, 영업익은 29.19% 감소했다. 연간 기준으론 매출 300조800억원, 영업익 32조730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5.89%, 398.17%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4분기 영업이익은 증권업계 전망치였던 7~8조원대를 크게 밑돈다.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스템과 파운드리 부문에서 적자폭이 커지며 시장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발 범용 메모리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한 것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
김형태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부문은 가이던스 대비 메모리 출하량(B/G), 가격(ASP) 모두 부진하고 파운드리 적자 폭도 확대되고 있다”며 “세트 업황 둔화, 구형 메모리 공급 과잉, 파운드리 가동률 하락, 주요 고객사향 HBM3E 공급 시점 지연 등 기대보다 우려가 부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메모리 업계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는 견조하지만, 삼성전자는 이같은 수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5세대 HBM 제품인 HBM3E의 엔비디아 공급을 추진하고 있지만, 품질테스트 통과가 지연되면서 수익성이 낮아졌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같은 상황과 관련해 CES 2025에서 “삼성이 HBM 퀄테스트를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면서도 “설계를 새로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황 CEO가 삼성전자의 HBM 설계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삼성전자는 역사상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부활하려면 새로운 고객에 AI 메모리를 공급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외에도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부문 실적이 다소 둔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갤럭시Z6 시리즈 출시 효과 감소 및 업체간 경쟁 심화로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TV 등 가전제품 분야에서도 중국 업체와 가격 경쟁으로 마진이 줄고 있다. 증권가에선 MX사업부와 네트워크사업부가 2조원 안팎, 디스플레이 1조원 안팎, TV 및 가전은 3000억원 안팎의 영업익을 낸 것으로 예상한다.
LG전자도 계절적 비수기와 일회성 비용 증가에 따른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LG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22조7775억원, 영업익 146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0.2% 늘었지만, 영업익은 53.3% 쪼그라들었다. 연간 기준으론 영업익이 3조4304억원으로 전년보다 6.1% 감소했지만, 매출은 87조7442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
LG전자의 4분기 영업익은 증권가가 내놓은 전망치(3970억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특히 자회사 LG이노텍이 3000억원대의 영업익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적자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전자 단독 실적 기준으론 영업적자를 시현할 전망”이라며 “이는 비수기에 진입한 가전(H&A) 사업 이익이 급감하는 가운데 TV(HE), 비즈니스솔루션(BS) 사업 등이 연말 마케팅 비용 증가와 수요 둔화 등으로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업계에선 물류비 증가를 수익성 악화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한다. 해상 물류비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11월부터 지속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7일 기준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는 2460.43으로 약 1년 사이 두 배 정도 올랐다. 올해도 지수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물류비 부담은 지속될 전망이다.
마케팅 비용이 증가한 점도 어려움을 더한다. LG전자는 TV 등 주요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마케팅 비용 등 일회성 비용 부담이 커졌다.
LG전자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예상치 못한 글로벌 해상운임 급등이나 사업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한 재고 건전화 차원의 일회성 비용 등이 발생하며 수익성에 다소 영향을 줬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연간 전사 경영실적으로 보면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에 따른 질적 성장이 이어지고 있어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박혜원 기자
sunon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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