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구글이 운영체제(OS)를 시작으로 인공지능(AI), 확장현실(XR), 오디오 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며 시너지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랜 협력을 이어온 구글의 지원에 힘입어 스마트폰, TV, IT 기기 등 여러 제품군에서 차별화 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다만 구글과 고착화 한 협력이 삼성에는 독자적 생태계 구축이 아닌 기술 ‘종속’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각국 규제 당국이 겨눈 반독점 제재 가능성 역시 삼성에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와 구글의 협력은 2010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갤럭시S 스마트폰 출시로 시작됐다. 2024년 삼성전자가 선보인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 ‘갤럭시S24 시리즈’에는 구글과 협업을 거쳐 탄생한 ‘서클 투 서치’ 기능이 최초 탑재되기도 했다.
이달 공개할 갤럭시S25 시리즈에는 구글의 AI 기능을 일정 기간 무료 제공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갤럭시S25 시리즈 구매 고객에게 3개월에서 최대 1년간 구글 ‘제미나이 어드밴스드’ 구독권을 제공한다. 제미나이 어드밴스드는 구글 유료 구독 서비스로 월 19.99달러(2만9400원)를 내야한다.
삼성전자는 2024년 12월 12일(현지시각) 구글, 퀄컴과 미국 뉴욕 구글 캠퍼스에서 개발자를 대상으로 XR 언락(XR Unlocked) 행사를 개최하고 ‘안드로이드 XR’ 플랫폼과 이를 탑재할 기기인 ‘프로젝트 무한(無限)’을 소개했다.
안드로이드 XR은 삼성전자, 구글, 퀄컴이 개방형 협업을 통해 공동 개발한 플랫폼이다. 구글 제미나이를 통해 자연스러운 대화 방식으로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고 사용 상황과 맥락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맞춤형 응답을 제공하는 AI 에이전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코드명 ‘프로젝트 무한’은 안드로이드 XR이 적용될 최초의 헤드셋으로 연내 출시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구글·퀄컴과 협업을 바탕으로 기존 메타(점유율 74%)가 장악 중인 XR 헤드셋 시장에 균열을 내겠다는 각오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선 구글이 공동 개발한 3D 오디오 기술 ‘이클립사 오디오’를 탑재한 TV를 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이클립사 오디오는 삼성전자를 포함한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이 속한 ‘오픈미디어 연합'(AOM)이 채택한 IAMF(Immersive Audio Model and Formats)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음향 데이터를 디바이스 환경에 맞게 최적화해 3차원 공간에 있는 듯한 몰입감 있는 사운드 경험을 제공한다.
양사의 협업 스토리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이 반독점 소송 및 규제 리스크에 잇따라 노출되면서 기술 종속과 협력 사이를 맴도는 삼성전자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구글은 2024년 8월 미국 법무부가 제기한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구글이 기본 검색 엔진 설정 대가로 애플과 삼성 등에 수십조원을 지급함으로써 경쟁업체의 시장 성공을 차단했다고 인정했다. 법무부는 그해 11월 독점 해소 방안으로 구글의 크롬 강제매각 등 내용이 담긴 시정안을 법원에 제출했다.
지난해 6월에는 EU가 삼성전자 갤럭시S24 시리즈에 구글 ‘제미나이 나노’가 탑재된 것과 관련해 반독점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는 절차를 밟기도 했다.
구글은 최근 일본에서도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는 판단을 받았다. 일본 공정위는 구글에 위반 행위 철회 등을 요구하는 배제조치(시정명령) 처분안을 발송했다. 안드로이드 OS를 이용하는 스마트폰 제조사에 자사 검색 애플리케이션을 사전에 탑재하고 초기 화면에 배치하도록 요구한 것이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2024년 9월 말에는 미국 게임 회사 에픽게임즈가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구글과 삼성전자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에픽게임즈가 구글 플레이스토어 대신 수수료를 피할 수 있는 별도의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자 이들 앱마켓에서 퇴출했다는 주장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구글의 리스크를 온전히 짊어지기 보다는 실리적 차원에서 구글과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체 개발 AI의 고도화를 게을리하지 않는 동시에 구글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잇단 규제로 인한 구글의 영향력 약화는 그동안 의존도가 높았던 삼성에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며 “지난해 말 오픈AI가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AI 기능을 탑재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이 그런 사례다”라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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