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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계엄이 통치행위? 언론이 내란 선동 길 터줘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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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왼쪽부터)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지난 10월1일 김용현 전 국방장관(왼쪽부터)과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주요 내란죄 피의자들이나 계엄선포를 옹호하는 세력의 발언들을 검증 없이 그대로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언론의 ‘받아쓰기’ 관행이 자칫 내란사태를 여야 ‘정쟁’ 구도로 바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다.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12·3 내란과 언론 민주주의 보루인가, 동조세력인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이한준 민언련 객원연구원과 박진솔 민언련 활동가가 발제, 김재경 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간사,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 이희영 변호사(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 채영길 한국외대 교수(민언련 정책위원장)가 토론자로 나섰다.

보수성향 신문으로 분류되는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이번 내란 국면에서 한겨레·경향신문보다 관련 기사를 적게 쓴 것으로 나타났다. ‘계엄’과 ‘탄핵’을 키워드로 했을 때 경향신문이 1409건, 한겨레가 1330건을 작성한 반면 조선일보는 717건을 작성했다. 동아일보는 781건, 중앙일보는 1224건을 작성했다. 이한준 연구원이 12월3일부터 13일, 12월15일부터 31일까지 두 구간으로 나눠 언론 보도를 분석한 결과다.

이한준 연구원은 “보통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의 기사 수를 경향신문·한겨레가 잘 이기지 못한다. 이번 사태에서 보수성향 신문들이 이례적으로 소극적 보도를 한 것 아닌지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란’과 ‘수괴’로 키워드를 바꾸면 이러한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한겨레(807건), 경향신문(539건), 중앙일보(304건), 동아일보(212건), 조선일보(173건) 순이다.

▲ 1월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 1월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진=민주당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는 내란 국면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키워드를 강조했다. ‘전체주의’ ‘잔머리’, ‘광기’가 이 대표의 연관어로 드러났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이재명 대표의 ‘군주’, ‘친위’, ‘쿠데타’, ‘미치광이’ 발언 등이 빈번하게 거론돼 보수진영의 반발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이한준 연구원은 전했다.

방송사별로도 우선적으로 보도된 키워드가 달랐는데, 가령 MBC는 비상계엄에 대응하는 ‘시민’을 주요 키워드로 했고 JTBC는 계엄에 ‘령’을 붙여 강제성을 부각하는 ‘계엄령’을 키워드로 보도했다. 이한준 연구원은 “YTN은 ‘내란’이나 ‘김용현’ 등의 키워드가 다른 방송사 대비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타 방송사 대비 내란 모의자·가담자를 다루는 보도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밝혔다.

검찰발 기사를 무분별하게 전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박진솔 민언련 활동가는 “검찰발 받아쓰기나 공수처 간 수사 경쟁을 강조한 보도는 YTN, 연합뉴스 TV에서 압도적이었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에서도 두드러졌다”며 “권한 없는 검찰의 내란죄 수사를 비판하거나 수사 과정의 문제를 심도 있게 짚어본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박진솔 활동가는 특정 언론의 취재를 불허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기자회견에 대해 언론이 더 강하게 비판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 활동가는 “취재 불허 문제를 보도한 언론은 41곳, 기자회견 이전에 해당 문제를 지적한 언론은 단 12곳이었다”면서 “김용현 변호인단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쓴 언론은 80곳이었다. 내란 세력의 스피커 노릇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란과 민주주의 사이에 중립은 없다”

토론에 나선 현직 기자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를 내란으로 규정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재경 언론노조 MBC본부 민실위 간사는 “이번 사태는 윤석열 세력이 민주주의를 뒤집어서 전복시키려 했던 행위”라며 “불법 여부와 여야 정치적 셈법이 어떻게 되는지 등이 언론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12·3 내란과 언론 민주주의 보루인가, 동조세력인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재령 기자
▲ 3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12·3 내란과 언론 민주주의 보루인가, 동조세력인가’ 긴급토론회가 열렸다. 사진=박재령 기자

김재경 간사는 “내란과 민주주의 사이에 중립은 없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면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내란 사태를 계엄이라고 순화하는 것, 여야 간의 대치 상황으로 방향을 트는 것 등은 언론으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계엄사태’로 용어를 쓰는 언론이 많은데 ‘내란사태’로 통일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중석 뉴스타파 기자는 “통상적으로 모든 뉴스들이 공론장에 올라오면 시민들이 다 판단하고 거르고 하겠지만 지금의 내란은 아주 예외적인 국면”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도 언론이 가지고 있는 저널리즘 원칙들, 사실과 의견의 분리 등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언론의 잘못된 관행으로 꼽히는 검찰발 ‘받아쓰기’ 기사에 대해 박중석 기자는 “과연 이 기사를 쓸 것인가, 검찰은 어떤 의도로 이걸 줬을까, 이 기사가 나왔을 때 검찰은 어떤 수혜를 입을까 등 정보 소스(원천)에 대한 문제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검찰의 내란 수사 범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검찰의 여러 ‘언론플레이’를 무분별하게 언론이 받아준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는 “이 국면을 계기로 검찰이 다시 조직을 재편해 정권 교체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는 충분히 보인다. 다만 이번 국면에서 검찰의 보도를 받아쓰지 않을 방법은 없었던 것 같다”며 “과거 피의사실 공표를 문제 삼던 언론이 왜 이번엔 다 받아쓰냐는 삐딱한 질문도 있다. 하지만 과거 일부 언론에 정보를 흘려 여론 재판을 부추기던 방식과 지금의 상황은 확실히 다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일부 언론에선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나 개헌론을 떠오르는 키워드로 강조하고 있다. 이정환 대표는 “지금 탄핵을 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는 프레임이 보수 언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며 “지금 대선이나 개헌은 사실 이야기해선 안 될 주제들이다. 혼란을 빨리 끝내는 방법은 질서 있는 탄핵과 진상 조사, 그리고 처벌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란죄 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선 지나친 속보나 단독 경쟁도 지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희영 변호사(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은 “윤석열의 계엄은 내란죄 구성 요소에 딱 들어맞는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계엄이 통치행위라는 내란 세력의 주장을 검증 없이 그대로 내보내고 있다”며 “헌정질서 유린하는 사람들의 말을 합리적인 의견인 것처럼 포장한다. 속보나 단독을 달고 내란범들의 말을 여과 없이 내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희영 변호사는 “내란 사태가 확실하게 종료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성에 젖은 언론의 무비판적 받아쓰기가 내란 선동의 길을 터주는 것이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며 “내란범들의 막무가내식 주장을 그대로 내보내면 ‘정쟁’이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게 된다. 많은 국민들이 현 상황을 정치적 대립 문제로 여기게 만들고 있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주장은 보도 가치가 있는 정치적 견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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