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엔 트랙터까지 끌고 왔던데, 그들이 뭔데 제 삶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죠?”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초고가 아파트 나인원한남 거주자 오모(42)씨가 최근 이 지역에서 시위가 잦아진 데 대해 한 말이다. 이날은 한남동에 집회가 없어서 ‘반짝’ 조용했는데, 오씨는 “오랜만에 평화롭다. 대규모 시위가 있는 날은 소음과 교통 통제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서울의 전통적 부촌 중 한 곳인 용산구 한남동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매일같이 개최되며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 12일 민주노총 간부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연 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기습 시위를 벌인 것이 시작이었다. 22일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트랙터 13대를 관저 앞으로 끌고 오기도 했다. 탄핵에 반대하는 윤 대통령 지지 단체도 이곳에서 ‘맞불 집회’를 벌이고 있다.
집회는 대부분 도로 위에서 열리기 때문에 교통이 통제된다. 집회 때문에 관저 앞 한남대로 양방향 차량 통행이 완전히 막히기도 한다. 한남더힐에 사는 이모(27)씨는 “(최근 집회를)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난다”며 “외출 일정과 시위가 겹치면 짜증이 나 나가기 싫어 약속을 취소한 적도 있다”고 했다.
‘조용한 부촌’ 한남동에서 겪어 보지 못한 소음에 고통을 겪는다는 주민도 있다. 나인원한남에 거주 중인 50대 김모씨는 “(단지의 보안이 좋아) 시위나 집회로 인한 안전 문제 같은 건 걱정하지 않지만, 조용한 동네가 시끄러워진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한남동 주택에 거주하는 30대 이모씨는 “소음까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위가 끝난 뒤 담배꽁초나 쓰레기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이들도 피해를 받고 있다 한강진역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47)씨는 “주 고객층은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나 외국인 관광객인데 시위가 있으면 가게에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인원한남의 한 가정에서 일하는 50대 가사관리사(가사도우미) 김모씨는 “탄핵 찬반 시위대가 충돌하면 출퇴근이 어려워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첫날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개방하고, 국민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며 용산 국방부 청사에 대통령실을 설치했다. 청와대 경내에 있던 관저를 사용하지 않고 3.2㎞ 떨어진 기존 외교부 장관 공관을 개조해 대통령 관저로 삼았다.
한남동 주택에서 2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67)씨는 “대통령이 출퇴근할 때 교통이 통제되고 시위가 잦아지는 등 관저가 생겨 좋은 점은 단 하나도 없다”면서 “왜 주민들 다 불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다음 정권은 청와대를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윤 대통령 지지자는 연일 이어지는 집회를 참을 수 있다고 했다. 한남동 주택에서 사는 30대 최모씨는 “물론 불편하지만 윤 대통령을 지지하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면 한남동이 더 시끄러워지겠지만, 기각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