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윤식의 시선
」
〈가족계획〉으로 다섯 배우가 뭉쳤습니다. 가족을 소개한다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독특한 운명체. 저마다 특수한 조건을 가진 이들이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면서 진짜 가족이 됩니다.
백윤식도 누군가의 할아버지입니다. 가족을 아끼는 강성에게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이 있다면
강성은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어떻게 해서든 이 특별한 가족이 다치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묘책을 냅니다. 제 현실도 마찬가지죠. 손자와 손녀까지 3대가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책임감이 큽니다.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사춘기를 지나며 한 인격체로 완성되죠. 우리 아들에게도 그랬지만 저는 굉장히 어려도, 자식일지라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존중하면서 온전히 발돋움할 수 있도록 했던 것 같아요.
극중 손녀인 지우(이수현)는 가족 중 유일하게 할아버지를 잘 따르죠. 실제로 촬영 중 연기 조언을 청하기도 했나요
저는 후배들에게 직접적인 조언이나 군소리는 안 해요. 스스로 터득하게 하고, 정 아니다 싶으면 빙 둘러 말하죠. 받아들일 능력이 있다면 스스로 한계를 깨고 나오길 바라면서.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예요. 일정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자신의 ‘것’을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 진정한 시작인 거죠.
그간 강렬한 장르물의 모습에 익숙해서인지 〈가족계획〉에서 비니를 쓰거나 캐주얼 차림을 한 모습이 재밌습니다
의상 컨셉트의 변주를 좋아해요. 평소 캐주얼 차림을 즐기는데, 이번 기회에 시청자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즐거웠어요.
〈가족계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글쎄요. 배우로서 모든 장면이 중요하죠. 작품이 끝난 후에도 신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주마등처럼 지나갈 때가 많습니다. 인생을 좀 살아서 그런지, 요즘 불쑥불쑥 옛날 생각이 떠오르기도 해요. 좋은 기억이면 괜찮은데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면 빨리 지워버립니다(웃음).
배우에게는 시간 흐름에 따라 거치게 되는 사회적 역할이 있습니다. 청년이 중년이 되고, 아버지에 이어 할아버지를 연기하게 되는 건 자연스럽지만 백윤식은 그저 ‘백윤식’이라는 인물을 연기하죠. 후배들에게 비결을 설명해 준다면
알려주면 안 되니까 비결이죠(웃음). 나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돈독하게 형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여러 작품에 뿌리내리는 거지 특별한 건 없어요. 열심히 하다 보면 주변에서 기회를 주고 도와준달까요. 그래서 사람이 중요합니다.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겠습니까? 그런 좋은 시스템과 환경을 밑바탕으로 자신의 것을 첨가하면서 끊임없이 걸어가는 겁니다.
1970년에 데뷔했습니다. 50년 이상 연기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나요
어느 직업이든 한 가지를 하다 보면 어떤 ‘경지’에 이른다죠. 연륜과 경험이 쌓이면 타인이 근접할 수 없는 해박한 기술이나 지식은 물론, 어떤 경우에는 인격까지 조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요. 저도 이제야 ‘배우의 일이 이런 거구나’라고 느껴요. 그러면서도 시청자나 관객에게 캐릭터의 이런 맛 저런 맛 보여주고, 천편일률적인 것보다 늘 변화를 선사하는 게 우리의 책임과 의무가 아닌가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백윤식이 아닌 ‘배우’라는 단어가 인생에 붙어버린 거예요. 생의 흐름에 붙어버렸어요.
‘ing’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죠. 백윤식이 배우로서 꾸는 꿈이 있다면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요. 목표는 자꾸 상향되고, 그 질을 높이려 하게 돼요. 100년을 연기해도 그렇겠죠. 배우뿐 아니라 어느 직업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저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그게 인생을 사는 법이고 다 똑같죠, 뭐.
이 범상치 않은 가족에게 한 마디
이번에 배우들을 잘 만났어요. 다른 건 알아서 잘들 하겠지요. 그러니 참 잘 만났다,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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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나의 마음
」
〈가족계획〉의 영수는 상대의 기억을 지배하는, 어쩌면 가장 잔인한 능력을 지닌 엄마입니다
그래서 다정하지 않은데 다정함을 연습해요. 어릴 때부터 특교대에 차출돼 인간 병기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감정이 결여돼 있어요. 그러니 다정함을 책으로 배운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웃어주고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려고 노력하면서요. 늘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연습하는데, 그 모습마저 ‘평범한 여자의 옷’을 학습한 것 같거든요.
시청자는 영수에게 새로운 형태의 ‘모성’을 느끼기도 하겠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이 더 깊이 알 필요는 없지만, 저는 아이들을 향한 영수의 집착을 너무 괴롭고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아이들만큼은 자신이 누리지 못한 보통의 인생을 선물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했어요. 한 마디로 ‘결핍’이 제가 줄곧 기댄 감정이에요. 전작들의 메시지가 무거운 감이 있어서 블랙 코미디를 선택한 건데, 역시나 웃지 못했죠(웃음).
〈킹덤〉 〈고요의 바다〉 〈브로커〉 〈다음 소희〉까지 전작들의 사회적 메시지가 분명했습니다. 블랙 코미디 연기를 펼치며 해소된 감정도 있나요
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든 이유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생각나는 지점이 분명 있는데, 그것을 상기시키면서도 복수의 통쾌함을 안겨주기 때문이에요. 분개했던 주제들을 가벼운 소재로 쓰거나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는 전사로 낭비하는 건 별로인데 〈가족계획〉은 균형이 적절했습니다.
류승범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 건 어떤 경험이었나요? 가족으로 함께한 배우 모두 개성이 뚜렷해요
승범 씨에게도 자주 얘기했는데 그는 참 동물적으로, 날것으로,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이미 현장에 그 인물로 존재해요. 현장에서 계속 철희로 있어줘서 많이 의지했고, 고마웠어요. 수현이도 데뷔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잘해서 놀랐고, 로몬이는 귀엽죠. 애교가 많아서 현장 분위기가 늘 좋았으니까. 그 밖에도 보석 같은 배우들이 히든카드처럼 등장해요. 백윤식 선생님은 뭐 말할 것도 없죠.
우리 가족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면
비범함.
실제로 ‘브레인 해킹’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갖겠습니까
제 머릿속에는 작은 지우개가 있어요. 브레인을 해킹하는 능력까지는 필요 없지 않나.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자진해서 불필요한 건 잘 삭제합니다. 그래서 편한 면도 있으니 이 정도면 됐어요(웃음).
공들여 찍은 작품을 유심히 보는 편인가요
저는 한 10년쯤 지나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얼마 전 추석 특집으로 〈코리아〉(2012)를 봤는데 재밌더군요. 아마 〈가족계획〉은 시간이 더 걸리겠죠. 보면 자꾸 제 연기의 세부적인 것만 보여서요. 현장에서도 모니터를 유심히 하기보단 감독님을 믿고 ‘오케이’하시면 저도 ‘오케이’해요.
배두나에게 단발 머리란
사실 지겨워요(웃음). 제가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제 머리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나 봐요. 저는 한 번도 헤어스타일에 관한 컨셉트를 직접 제안한 적 없거든요. 머리를 조금만 기르려고 하면 감독님이 자르라고…. 제작진의 비주얼 계획상 제 단발을 선호하는 것 같은데, 저는 삭발해도 상관없어요!
영수처럼 배두나도 겁이 없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새가슴’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제가 자유롭게 행동하고, 말 안 듣게 생겼대요(웃음). 생각보다 겁 많고 고지식한 편인데도요. 영수가 겁 없는 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저도 가끔 두려움이 일면 ‘내가 잃을 게 있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어요.
이 작품을 통과하며 재정의한 가족의 의미는
전부터 피가 섞여야만 가족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변함없어요.
이 범상치 않은 가족에게 한 마디
언제나 집안에 평안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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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범의 기술
」
우리 가족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 하는 가족.
‘열일’을 예고했기에 팬들이 들떠 있습니다. 요즘 배우 류승범의 삶은 어떤가요
심플해요. 다채롭고 흥미로운 시간을 지나 조금 잔잔한 시기에 도달한 것 같아요. 마음도 단순하고요. 잔잔한 바다 위라고 해야 할까요?
〈가족계획〉은 또 다른 파도가 되겠죠. 작품 공개를 앞둔 심정은
예전처럼 긴장은 좀 덜한 것 같고, 그저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구경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일이 제 뜻대로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예전에는 제가 운전대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늘 조마조마했다면, 지금은 이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관전하는 재미가 생겼어요.
〈가족계획〉은 류승범의 마음을 어떻게 두드렸나요
남편과 아빠가 되고 새로운 삶의 챕터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니 가족 이야기가 크게 다가와요. 〈무빙〉도 그래서 와닿았죠. 지금은 가족 이야기에서 내가 모르는 감정은 배우고, 어떤 부분은 또 철저히 공감하니까 확실히 삶이 확장된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전작 〈무빙〉의 특수 능력자 프랭크는 타인의 가족을 공격했다면, 철희는 자신의 능력으로 가족을 지키죠
철희는 좀 더 인간적인, 맨몸 싸움을 해요. 액션 신이 많지는 않지만, 키워드는 분명했어요. 평상시 가족들과 있을 때의 어딘지 허술한 아빠의 모습과 가족을 위협하는 자들 앞에서 야수처럼 돌변했을 때의 모습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극단적인 두 얼굴을 보여주니 쾌감이 일었어요.
철희는 그저 ‘아버지’였네요
지금 제 삶과 맞물리며 진짜 아빠의 포지션을 배웠어요. 진짜 남자가 돼야 해요. 그건 강함을 감추고 부드러운 면을 꺼내 평화를 지키는 일이죠. 강할 때만 강해지는 것. 진정한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하는 사람은 정의롭죠.
이번 작품에서 대본을 수없이 읽었다고요
고백하면 20대 때는 직관에 따르려 했어요. 시나리오나 캐릭터 분석은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게 직관이라고 믿었으니까. 그 직관을 찾기 위해 늘 촉을 세우고 살았어요. 지금은 배우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류승범이라는 개인을 투영하기보다 이야기에서 답을 찾다 보니 오히려 류승범이 얻는 게 많아요. 책을 한 번 읽었을 때와 두 번 읽었을 때가 다르듯.
철희는 말합니다. “한두 대 정도는 먼저 맞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실제의 류승범은
한 대만 맞아도 바로 “안녕히 계세요” 하고 뻗겠죠.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 왔지만 저는 비폭력주의자예요. 공격적인 에너지를 못 견뎌요. 저 때리지 마세요(웃음).
배두나와 부부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영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전달해야 하기에 참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두나 씨는 표현하지 않으면서 다 표현하는 게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제 방식은 순간의 에너지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고, 감정을 상대에게 ‘탁’ 던져준다면 두나 씨는 작품 전체를 읽어요. 서로 스타일이 다르니, 작업이 새로웠죠.
슬로바키아와 한국을 오가는 일의 기쁨은
촬영하다 집으로 돌아가면 100% 환기가 돼요. 전에는 의도적으로 털어내려고 친구들 만나 쓸데없이 술이나 마셨는데요. 한국에서는 오로지 여기서 쏟아낼 것을 쏟아내고 슬로바키아에서는 그곳의 에너지를 쏟아내죠. 축복 같아요.
요즘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스스로 재정의 해 본다면
배우라는 일을 비로소 제가 선택한 기분이에요. 그전에는 재능을 어딘가에서 받았다는, 일종의 운명 같은 걸 느꼈고(웃음). 괜히 삐뚤어지고 싶고, 다른 길을 찾아보고 싶기도 했는데, 지금 그 길을 돌아오니 완전한 내 선택으로 느껴집니다.
이 범상치 않은 가족에게 한 마디
건강하게 잘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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